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계, '역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되찾아야 한다 [PADO]

PADO 국제시사문예지
2025.10.18 06:00
[편집자주] 노에마 매거진의 이 멋진 에세이(9월 11일자)는 우리들로 하여금 손쉽게 세상을 설명해버리려는 경향을 반성하게 합니다. 현대의 이른바 '사회과학'은 몇 가지 요인들로 세상을 설명해버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면서 '합리적 선택'에서 연역하거나 통계자료에서 귀납해 설명 모델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합니다. 이 글의 필자인 존스홉킨스대 석좌교수 프랜시스 개빈은 이러한 단선적 사고를 우리의 오만함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몇 가지 실낱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수많은 사건, 변수, 행위자들이 엉켜 만들어온 두꺼운 직조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인류의 오랜 지혜를 되찾을 것을 권합니다. 현재 우리는 '역사'를 잘못 배우고 있다고 개빈은 주장합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단편적인 사건들의 연표를 외우거나 갖가지 영웅담, 사건을 배웁니다. 더욱 나쁜 것은, 기존에 믿고 있던 것들을 확인해주면서 편견을 강화하는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신화들을 잔뜩 배웁니다. 개빈이 말하는 '역사적으로 사고하기'는 이런 것과 정반대의 것으로, 복잡한 세상 앞에서 마치 '신 앞에 선 듯한 겸허함'(piety)을 갖고 조심스럽게 '암중모색'(暗中摸索)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명확하게 보인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그 모호성을 받아들이는 겸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직조물이 지금까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를 알아야 그 위에서 새로운 직조물을 짜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많은 사건, 변수, 행위자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 응시해야 할지는 우리의 대담한 선택입니다. 그 선택이 맞으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택해야 하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호한 미래를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오만한 모델링이 아닌 겸손한 역사적 사고를 복원해야 우리의 실천이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프랜시스 개빈의 조언이 손쉬운 음모론, 명쾌한 모델링의 난무로 부박(浮薄)해진 오늘날의 지적 환경에서 더욱 귀하게 들립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963년 11월, 햇살이 쏟아지는 댈러스의 어느 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엘름가로 접어들 무렵,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인물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검은 우산을 펼쳐 들고 서 있던 남자였다. 몇 초 뒤 총성이 울렸고, 세상은 영원히 바뀌었다.

그 충격적인 사건 이후, 미국이 설명할 수 없는 폭력의 현실과 씨름하는 동안 "우산 남자"의 이미지는 작가 존 업다이크가 훗날 표현했듯 역사의 목에 매달린 페티쉬(fetish)가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 튀는 존재였다. 아귀가 딱 맞는 인과관계를 갈망하는 세계에서 그의 존재는 해로워 보였다. 그 우산은 비밀 신호 장치였을까? 아니면 첫 번째,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목구멍 부상을 입힌 플레셰트(미세 침) 발사용 위장 총이었을까? 수년 동안 수사관들과 음모론자들은 그를 거대한 음모의 열쇠, 은밀한 계획의 부분으로 여겼다.

하지만, 결국 진실이 드러났을 때, 그것은 거의 터무니없을 만큼 평범했다. 1978년 미 하원 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댈러스 창고 직원 루이 스티븐 윗이 자신이 바로 그 '우산 남자'였다고 증언했다. 그의 목적은 암살이 아니라, 야유였다. 우산은 케네디 가문에 대한 상징적 항의의 표시였다. 그것은 네빌 체임벌린 전 영국 총리—그의 상징이 바로 우산이었다—의 유화정책과 당시 주영 대사였던 조지프 P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의 관계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 수사관 조시아 톰프슨은 이를 두고 "정말로 터무니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실일 법한 설명"이라 평했다.

이 '우산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절실히 세상의 복잡함을 깔끔하고 빈틈없는 설명으로 간단히 정리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특히 비극 앞에서 확실성을 갈망하며, 흩어진 사실들을 하나의 일관된—그리고 종종 음모론적인—이야기로 엮어내려 한다. 맑은 날 우산을 든 남자를 보면 우리는 뭔가 음모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우연과 기이함, 의미 없는 사건이 있는 무대라는 생각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국가적 비극의 순간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기본 설정에 가깝다. 현대 문화는 확실성을 보장해주는 사고방식을 선호한다. 경제학의 간결한 모형들, 정치학의 야심찬 예측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데이터 기반의 확실성 말이다. 우리는 단순한 원인, 일반화 가능한 법칙, 그리고 명확하고 예측가능한 결과를 추구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운영, 전략, 사회적 의사결정의 영역에서 이런 확실성에 대한 갈망은 위험한 약점이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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