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압송한 뒤 "베네수엘라 운영(run)"을 언급한 가운데,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전쟁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직접 통치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을 계속 봉쇄하면서 새 지도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4일(현지시간) 루비오 장관은 NBC의 '밋 더 프레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라며 베네수엘라 통치로 해석된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진화에 나섰다. 루비오 장관은 "우리는 베네수엘라가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게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좋을 뿐 아니라 우리의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루비오 장관은 특히 미국이 베네수엘라 해안 근처에 미 해군 함정을 배치해 시행 중인 '석유 검역'을 지렛대 삼아 베네수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 군은 해안경비대의 법 집행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마두로 체포뿐 아니라 우리의 제재 집행까지 포함한다"며 "이것은 엄청난 타격을 주는 지렛대이며 원하는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오의 이 같은 발언은 마두로 축출 작전 이후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칠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베네수엘라가 이란, 헤즈볼라, 쿠바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마약 밀매를 중단하며, 석유 산업이 미국의 적대 세력에게 이익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기는 우리가 사는 서반구"라며 "서반구가 미국의 적, 경쟁자, 라이벌의 작전 기지가 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루비오 장관은 CBS ' 페이스 더 네이션'에서도 "현재 제재 대상 석유 선적물에 대한 검역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미국 제재 대상 선박이 있는데 법원의 명령을 받으면 그 배를 압류할 수 있다"며 "이것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변화를 압박하는 데 있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라고 밝혔다. 또 "마두로 정권은 석유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라며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미국의 제재 대상 석유 선적을 봉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이후 미군은 마약 운반선으로 추정되는 선박 최소 35척을 공격해 최소 115명을 사살한 것 외에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 3척도 나포했다.
루비오 장관은 세계적인 중질유 부족 사태가 미국 기업들의 베네수엘라 석유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ABC 방송의 '디스 위크' 프로그램에서 "최근 며칠 간 석유 회사들과 얘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서방 기업들의 관심이 매우 클 것"이라며 "러시아와 중국을 제외한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걸프만 연안의 정유시설은 이러한 중질 원유를 정제하는 데 있어 최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에서는 세계 최대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1일 석유 생산량은 114만 배럴로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1%에 그친다. 우고 차베스의 국유화 이후 셰브론을 제외한 미국 기업들이 전부 철수하고 생산 설비가 노후화한 여파다. 그 사이 중국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최대 외국인 투자국이 됐다. 중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량의 약 80%를 구매하고 있고 러시아도 일부 지분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루비오 장관이 잇달아 석유 재투자를 언급하자 트럼프 행정부의 마두로 축출 의도가 석유에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과거 국유화로 철수했던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 시설에 재투자해 생산 인프라를 복구하고 증산하면 생산량을 늘리면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다. 트럼프에게 석유 투자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지정학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핵심 수단인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무력외교를 노골적으로 선언한 셈"이라며 "제국주의를 수용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난했다.
루비오 장관은 마두로 정권으로부터 저렴한 석유를 공급받아 경제를 지탱해 온 쿠바도 다시 언급했다. NBC의 ' 밋 더 프레스' 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다음 목표가 쿠바냐는 질문에 루비오 장관은 추측을 피하면서도 쿠바 정부를 "엄청난 문제"라고 칭하며 "그들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두로 정권의 내부 안보기구가 "완전히 쿠바인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권한을 넘어선 공습이라는 비판 관련해 루비오 장관은 이날 ABC '디스 위크'에서 마두로 축출 작전이 "침략"이 아닌 "법 집행 작전"이었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마두로는 '마약 테러' 혐의로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뉴욕 검찰에 기소됐다.
한편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베네수엘라 운영"에서 루비오 장관이 수장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루비오 장관은 반공 및 반권위주의 열기가 뜨거운 마이애미의 쿠바 망명자 공동체에서 자랐고 마두로와 전임자인 차베스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부친은 1947년 도미니카 공화국의 우익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 축출 시도에 관여했고 루비오 본인은 어린 시절 조부모와 함께 쿠바의 공산주의 정권을 전복시키는 역할극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루비오 자서전 <미국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