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옛 왕가 남성을 양자로 입양하는 방식으로 왕실 승계 규칙을 79년 만에 개정했다. 그러나 정작 현 일왕의 친딸인 아이코 공주의 왕위 계승은 끝내 배제하면서 '남성 승계'만 고집하는 시대착오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NHK,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왕족 수 확보를 위해 옛 왕가 남성을 양자로 들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황실전범' 개정안이 전날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표결을 거쳐 찬성 다수로 최종 가결됐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 일본혁신당, 국민민주당, 공명당, 참정당 등이 찬성 표를 던졌으며 제1 야당 입헌민주당, 공산당, 레이와신센구미, 사민당 등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안의 핵심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왕족 신분을 잃었던 옛 11개 왕가(방계 가문)의 남성 후손을 양자로 들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5세 이상의 미혼 남성을 양자로 들인 뒤 그 후손들 가운데 남성에게는 왕위 계승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개정 법안을 적용받는 옛 황실 구성원은 '구 궁가(舊宮家)'라고 불리는 11개 가문으로, 현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약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36∼38촌 관계다.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는 남성 승계만 인정하는 황실전범 규정에 따라 왕위를 이을 수 없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논의 없이 남성 승계를 위한 경우의 수만 늘린 셈이다.
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여왕을 바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옛 왕가 후손의 왕위 계승에 찬성하는 응답은 23%에 그친 반면, 70%가 넘는 국민이 여성 일왕에 찬성했다. 아사히신문의 5월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2%가 여성 일왕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개정안 통과 찬성 입장을 보인 집권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민당 중진인 무라카미 세이치로 의원은 지난 10일 개정안이 중의원에서 통과된 직후 "아이코 공주가 일왕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터무니없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 사회 비판도 나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일본 황실전범 개정에 관한 언론 질의에 "모든 나라의 모든 지위와 직업에서 여성의 권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포섭적인 정책을 장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지지통신이 전했다.
한편 이날 통과된 개정안에는 여성 왕족이 평민과 결혼하더라도 왕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이들이 낳은 자녀에게는 성별과 관계없이 왕위 계승권이 주어지지 않아 '남성 혈통'이라는 원칙은 굳건히 지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