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이시바가 13년 만에 살려낸 '전쟁 반성' 표현 다카이치가 삭제

김종훈 기자
2026.08.15 14:47

아사히 "다키이치, 정치 스승 아베 신조 방식으로 되돌아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정부 주최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 중인 모습./로이터=뉴스1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종전 81년을 맞아 15일 진행한 전국 전몰자 추도사에서 과거 전쟁 행위를 반성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취지의 문구를 담지 않았다. 전임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13년 만에 공식석상에서 되살려낸 표현을 삭제한 것으로, 일본 정계 주류의 역사 인식이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로 회귀 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사히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종전의 날인 이날 추도사에서 세계 양차 대전에서 사망한 일본 군인과 민간인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오늘날 일본의 번영은 전몰자들의 존귀한 목숨과 고난의 역사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나루히토 일왕 부부와 전몰자 유족 등 4300명이 참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은 일관되게 평화를 중시하는 국가로서 걸음을 이어왔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힘을 다했다"며 "전쟁의 참화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전후 81년이 지났지만 세월이 흘러도 이 맹세를 계승하고 관철해나갈 것"이라며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도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전하고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지난해 이시바 총리는 같은 날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지금 다시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비통한 전쟁의 기억과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서약을 세대를 넘어 계승하고 평화를 위한 행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본 총리가 전몰자 주도식에서 전쟁에 대한 반성을 언급한 것은 13년 만이었다. 2013년 아베 전 총리가 추도사에서 반성 표현을 뺀 뒤 후임자 누구도 추도사에서 반성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는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부전의 맹세'도 아베 전 총리 이후 10년 만에 다시언급했다. 이시바 총리는 "반성이 없는 곳에 교훈은 없다"며 전후 80년이 지났어도 역사를 올바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추도사에 대해 아사히 신문은 "이시바 전 총리가 13년 만에 되살린 반성과 부전의 맹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아베 전 총리의 방식으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했다.

이날 다카이치 정부 각료들과 집권 자유민주당(자민당) 지도부 등 정계 인사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잇따라 참배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과 오노다 기미 경제안보담당상, 기카와다 히토시 어린이정책담당상,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담당상 등 각료들이 신사 참배를 했다. 종전 일본 방위상들은 한국 관계 악화를 우려해 종전의 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피했다. 이에 다카이치 정부 내부에서 "한국과 좋았던 분위기가 끝날 수 있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공인으로서 역할보다 우파층 지지라는 사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비판이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힌다.

자민당에서는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 아리무라 하쿠로 총무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선거대책위원장 등 지도부 인사들이 이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취임 이후 직접 참배하지 않고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개인 명의 공물만 봉납해왔다. 스즈키 간사장은 이날 다카이치 총리가 공물을 대리로 봉납했으며, 이번에도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봉납했다고 설명했다.

매년 8월15일은 한국에서는 광복절, 일본에선 종전의 날이다. 일본이 1945년 8월15일 세계 제2차 대전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을 기념하는 취지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 전쟁 A급 전쟁 범죄자들을 비롯해 전범 여럿이 합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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