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9월 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포첸통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던 베트남항공 815편이 야자수와 충돌 후 추락해 한국인 승객 21명을 포함한 총 65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는 생후 14개월 태국인 남자아기 1명뿐이었다.
승객 60명과 승무원 6명 등 총 66명을 태운 베트남항공 815편 항공기는 이날 오후 1시쯤 베트남 호치민의 떤선녓 국제공항을 출발해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했으나, 약 45분간의 비행 끝에 포첸통 국제공항 인근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다.
공항에는 항공기의 방위각과 거리를 측정해 알려주는 무선 항법 보조 장치(VOR·DME)가 있어야 하지만, 포첸통 공항은 두 달 전까지 내전을 겪으면서 해당 장비가 도난당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특히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는 착륙 실패가 잦았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캄보디아 현지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열대성 강우 '스콜'이 쏟아지고 있었다.
항공기 조종사들은 공항 서쪽으로 5㎞ 떨어진 무지향성 표시시설(NDB)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육안으로 활주로를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하강해야 했다.
악천후 속에서 비행하던 항공기가 위치·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NDB 범위 내에 들어오자 조종사는 5000피트(약 1500m)까지 하강해 착륙 허가를 받는 등 관제소 측과 무전을 주고받으며 착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2000피트(약 609m)까지 하강했지만, 여전히 활주로를 찾지 못했다.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조종사 말에 관제소 측은 풍향이 바뀌었으니 동쪽에서 접근하는 23번 활주로 대신 서쪽에서 접근하는 반대편 5번 활주로로 착륙하라고 지시했다. 조종사들은 이를 받아들였고, 이후로는 교신이 없었다.
그러나 2분 후 베트남항공 815편은 5번이 아닌 23번 활주로 쪽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기체는 지상 200피트(약 61m) 높이까지 하강했다.
당시 조종실 음성 기록에 따르면 부기장은 기장에게 "활주로가 아직 보이지 않으니 복행(착륙하려다 다시 상승하는 비행)하시라"라고 말했지만, 기장은 잠시 기다려보자고 답했고 항공기는 지상 100피트(약 30m)까지 하강했다.
이때까지도 활주로가 보이지 않자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재차 착륙을 포기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복행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4초 뒤 항공기 왼쪽 날개가 야자수에 부딪히고 말았다.
당시 항공기는 활주로 방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였다. 야자수에 부딪힌 뒤 엔진 하나가 멈춰 기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고, 오른쪽 날개는 주택가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지나갔다.
이후 항공기는 시속 270㎞의 속도로 활주로에서 800m 떨어진 지점의 논에 추락한 뒤 180m가량 미끄러진 채 폭발했다. 복행을 시도하며 속력을 높이다 발생한 사고여서 피해가 더 컸다.
꼬리 부분을 제외한 기체 대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다.
목격자들은 사고기가 야자수와 부딪혔을 때 꼬리 부분에 불이 난 것을 봤다고 말했다. 한 목격자는 비상문이 열리면서 승객과 승무원들이 문 앞에 몰려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지만, 탈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탑승객 66명 중 태국 국적의 생후 14개월 남자아이 1명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승객 60명 중 한국인은 21명이었으나 모두 사망했다. 프놈펜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사고기에 탑승했던 오모군(당시 5세)은 추락 직후 심한 화상을 입은 채 현장에서 구조됐지만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던 중 끝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캄보디아 프놈펜 의대에 장학금을 기증하려던 권모씨(당시 40세)와 캄보디아에 의료 장비를 지원하는 등 봉사를 이어오던 원광대학교 의료봉사팀 6명, 이들의 활동을 취재하던 전북일보 기자 신모씨(당시 35세)도 포함돼 안타까움을 안겼다.
사고 직후 현장은 불에 탄 기체 파편과 탑승객들의 소지품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현지 주민들이 탑승객이 지니고 있던 수천달러의 현금과 귀금속을 훔쳐 가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중국인이 속옷 속에 비상금을 숨긴다는 속설에 따라 탑승객들의 옷이 벗겨진 채 발견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지 경찰과 구조대는 사고 발생 4시간여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대가 폭우로 질퍽해진 논바닥에서 구조 작업을 벌일 때 경찰은 탑승객의 소지품을 훔치려는 이들을 제지하며 생존자 확인 작업을 벌여야 했다.
한국인 희생자는 사고 나흘 만인 9월 7일 오전 3시 55분 특별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사고기에 탑승했던 회사원 강모씨(당시 39세)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해 사고 현장의 흙만 항아리에 담겨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