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1만9000㎞ 이상 떨어진 한국에서 디젤유(경유)를 수입한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의 여파로 연료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겨울철을 앞두고 물량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3일 블룸버그 통신은 유조선 프리아모스호가 조만간 한국산 경유 약 9만톤(t)을 유럽으로 운송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거래는 글로벌 원자재 중개 기업 트라피구라의 주도로 진행된다.
프리아모스호는 한국에서 출발해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까지 1만9000㎞ 이상 항해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목적지로는 영국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이 거론된다.
한국은 통상 아시아·태평양 국가들로 연료를 수출해 왔다. 때문에 이번 유럽 수출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유럽이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경유를 수입하는 것은 연료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경유 가격은 아시아보다 높은 수준이다. 중개업체 PVM에 따르면 유럽과 아시아 간의 가격 차이는 2023년 집계 이후 최대 폭으로 벌어졌다.
유럽은 정제 능력이 제한적이어서 경유를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더불어 중동 분쟁까지 겹치며 공급망이 타격을 받았다. 반면 중동발 원유 공급 차질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정유사들은 경유 등 석유제품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도 전시 상황에서 시행한 석유제품 수출 제한을 점진적으로 완화하면서 이달 연료 수출을 늘릴 예정이다.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유럽의 천연가스 비축량도 목표치에 미달하면서 겨울철을 앞두고 글로벌 가스 확보 경쟁이 격화할 조짐도 보인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유럽이 자체 설정한 최저 저장목표인 75%를 채우려면 현재 시세로 81억달러(약 11조119억원) 이상 규모인 100테라와트시(TWh) 넘는 가스가 추가로 필요하다. 정보분석업체 케플러의 고 카타야마 액화천연가스(LNG) 수석 애널리스트는 겨울이 예년보다 추울 경우 전 세계적인 연료 확보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의존도를 낮추면서 매년 상당량을 비축해왔다. 그러나 이번엔 이란 전쟁으로 가스 가격이 급등해 비축 비용 부담이 커진 것이다. 정부와 유틸리티 기업들은 LNG 공급이 회복되고 가격이 내려가길 기대하며 구매를 미뤄왔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LNG 운반선 운항이 크게 줄면서 공급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유럽의 겨울철 가스 수급을 좌우할 변수도 적잖다. 엘니뇨로 인한 포근한 초겨울 이후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올 가능성, 중국의 사재기, 노르웨이발 공급 차질, 미국의 늦은 허리케인 등이 꼽혔다. 블룸버그는 "이미 인도는 카타르산 공급 차질을 메우기 위해 지난달 6년 만에 최대치로 LNG를 수입했고, 대만·태국·한국도 물량 확보에 나섰다"며 "내년 1월 EU의 러시아산 LNG 수입 금지 조치가 시행되면 전체 수요의 약 5%에 해당하는 공급이 추가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