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유럽 겨냥 하이브리드 공세 전방위 확산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2026.09.27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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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리자=AP/뉴시스] 22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의 한 가옥이 러시아의 공습을 받아 파괴돼 있다. 2026.09.22. /사진=민경찬

최근 러시아의 유럽을 겨냥한 '하이브리드 공세'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공세는 군사적 수단과 정치·경제·사회·사이버·정보전 등 비군사적 수단을 결합해 상대국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이는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정규전과 비정규전의 경계를 흐려 안보 태세와 사회 전반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최근 유럽에서 확산하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세 양상을 살펴봤다.

여론과 국가 기능 흔드는 '인지전'·'사이버전'

지난 16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의회 국정연설에서 러시아가 배후로 의심되는 사이버 공격과 사보타주, 방화, 드론 침범 등 하이브리드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며 EU 차원의 대응을 위한 '하이브리드 대응지침(Counter-hybrid playbook)'과 '긴급안보프로토콜(Emergency Security Protocol)' 등의 마련을 제안했다.

EU가 지목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세는 크게 '인지전', '사이버전', '테러·사보타주(파괴공작)'의 세 영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인지전과 사이버전은 각각 유럽 사회의 여론과 정치 체제, 국가 시스템 등을 겨냥한 비군사적 차원의 공격이다.

인지전은 이민과 경제난, 우크라이나 지원 등 유럽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증폭시켜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정치적 결속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난 19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군사위원회는 러시아가 인지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목적은 유럽 내부의 신뢰를 훼손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동맹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지난해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러시아 정보공작 네트워크 '스톰-1516(Storm-1516)'의 개입이 확인됐다. 독일 당국에 따르면 스톰-1516은 러시아 군정보기관 총정찰국(GRU)의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AI) 콘텐츠와 딥페이크 영상, 가짜뉴스 등을 유포하며 반러 성향 정치인을 공격하고 투표 부정 의혹을 확산시켰다. 지난 9월 초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도 러시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정치 공작과 허위정보 유포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활발히 이뤄졌다.

러시아의 선거 개입 공작은 유럽 각국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정보당국은 스톰-1516이 2024년 유럽의회 선거와 프랑스 조기총선 등을 겨냥해 친러·반체제 성향 세력을 지원하고 선거 신뢰를 훼손하는 조직적 공작을 벌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몰도바 총선에서는 러시아와 연계된 불법 정치자금과 매표 행위가 확인됐고, 2024년 루마니아 대선에서도 친러 성향 SNS 계정의 대량 생성, 가짜뉴스와 선전물 유포, 선거 인프라 해킹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사이버전은 단순 해킹을 넘어 전력·난방·통신 등 핵심 인프라의 기능을 훼손해 사회·경제적 혼란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올해 7월 나토 북대서양이사회는 러시아가 '사이버 생태계'를 활용해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를 공격하고 있다며, 이를 동맹 안보를 위협하는 '불안정화 활동(destabilising activities)'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폴란드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태양광을 비롯한 30곳 이상의 재생에너지 시설과 대형 열병합발전소 등이 동시에 공격받았다. 폴란드 당국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을 배후 세력으로 지목했고, 이를 정보 탈취가 아닌 시스템과 데이터 파괴를 목적으로 한 실질적인 파괴 행위로 평가했다.

최근 러시아가 벌이는 사이버전에서는 비공식 조직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이는 공격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책임 귀속을 어렵게 하고 방어 비용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지난 7월 EU 이사회는 러시아 FSB가 글로벌 해커그룹인 '투를라(TURLA)' 등을 활용해 유럽 각국의 정부망에 침투하고 주요 인프라를 공격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특히 사이버범죄 조직과 '핵티비스트(hacktivist·해커와 활동가의 합성어)' 등을 포괄한 '악성 사이버 생태계'를 구축해 사이버전에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엄구호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하이브리드 공세는 정규전으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 비정규전 수단을 동원하는 것인데, 최근 러시아가 다양한 하이브리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장기전의 결과 전쟁에 투입할 자원이 고갈됐음을 보여준다"며 "러시아의 의도는 전쟁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활용이 용이한 비정규전 수단을 통해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부담을 높이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오데사=AP/뉴시스] 1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오데사 중심부의 한 사무용 건물이 러시아군의 드론 공격으로 불타고 있다. 2026.09.19. /사진=민경찬
전쟁 위험 고조시키는 테러∙사보타주

최근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세에서 군사적 수단이 포함된 테러·사보타주가 강화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지난 17일 EU는 OSCE(유럽안보협력기구) 상임이사회에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세가 장기간 조직적으로 이어져왔다며 "최근 정보조작뿐 아니라 사보타주와 핵심 인프라 교란도 갈수록 빈번하고 대담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8월 초 독일 라이프치히-할레 공항에서 발생한 폭발물 드론 공격 시도는 이 같은 물리적 공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라이프치히-할레 공항은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군수물자 수송에 활용되는 주요 화물·군수물류 허브로, 당시 폭발물을 탑재한 드론이 우크라이나 화물기 날개와 충돌했으나 폭발하진 않았다. 독일 정부는 경찰 수사와 공격 수법, 정보기관 첩보 등을 종합해 사건의 배후를 러시아로 공식 지목했다. 알렉산더 도브린트 독일 내무장관은 이를 '새로운 차원의 위협'으로 규정했고, 후속 조치로 주독 러시아 영사관 폐쇄를 결정했다.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를 공급하는 유럽 방산업체도 러시아의 사보타주 대상이다. 올해 8월 에스토니아 방산업체인 '밀렘 로보틱스'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당국은 러시아의 연루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불가리아 탄약 방산업체인 EMCO에서도 러시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발과 화재가 잇따랐다. 앞서 2024년 리투아니아에서는 우크라이나군용 장비를 생산하는 'TVC솔루션스'를 겨냥한 두 차례의 방화 사건이 발생했고, 러시아 정보기관이 연계된 것으로 파악됐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학과 교수는 "하이브리드 공세는 러시아가 개입이나 행위 자체를 부인하기 때문에 유럽이 집단안보조약을 발동하기도 어렵고 따라서 군사력을 동원한 보복도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며 "결국 유럽도 비례의 원칙에 따라 비슷한 형태의 하이브리드 공세로 맞대응하는 정도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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