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용지 가격 인상을 둘러싼 제지업계와 출판업계의 다툼이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했다. 출판업계는 무리한 인상이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제지업계는 업황 부진과 원가 상승에 따른 부득이한 인상이라고 항변한다.
15일 한국제지연합회와 한국인쇄협동조합연합회, 출판업계 등에 따르면 주요 제지사는 최근 고객사인 출판사 등을 대상으로 가격 인상안을 제시했다. 인상 폭은 업체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5%에서 최대 1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문학 전문 출판사 관계자는 "(인상안대로) 가격을 올리면 실제 수익성에 타격이 올 수준"이라며 "책 가격도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출판업계는 제지업계의 인상안이 지나치게 부담을 키운다는 입장이다. 인쇄용지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이른바 '빅 6'(무림, 한솔, 한국 등)들이 가격을 꾸준히 올려 왔는데, 여기에 추가 인상이 더해지면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종이 가격은 책 제조원가에서 가장 비중이 큰 항목이다. 제본비, 후가공 등을 제외해도 보통 40~50%가 종이 가격으로 쓰인다.
최근 매출 5조원 선(지난해 기준)이 붕괴되며 위기에 시달리는 출판업계가 소송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공정위가 제지업계가 담합으로 가격을 올려왔다는 결론을 내리며 불이 붙었다. 출판계는 현재 제지업계의 거듭된 인상으로 손해가 커졌다며 배상 청구소송에 참여할 원고인단을 모고 있다. 소송 제기 시점은 오는 12월이다.
제지업계는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출판 시장뿐만 아니라 제지 시장도 꾸준히 위축되고 있어 수익성 악화를 막으려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제지 판매량은 내수 42만여톤, 수출 53만여톤 등 95만여톤 줄어들었다. 종이의 주 원재료인 펄프 가격 역시 치솟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펄프 가격은 지난 14일 기준 735달러로 연초 700달러에서 5% 올랐다.
한 제지업체 관계자는 "원재료도 오르고, 판매량은 줄고, 적자는 확대돼 가격을 올리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며 "담합 여부와 가격 인상은 관계가 없고, 비용 부담을 반영한 조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에서는 제지업계의 가격 인상이 장기적인 출판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신규 책 공급의 상당 부분이 e북(전자책), 오디오북 등 대체 시장으로 옮겨간 만큼 종이값 인상이 종이책 소비자의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주요 단행본 출판사 22곳의 지난해 매출은 4310억여원으로 전년 대비 6.9% 감소했다.
대형 온라인 서점 관계자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휴대성이 좋은 전자책·오디오북의 선호가 크게 늘면서 점차 종이책의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지금도 종이책의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많아 (추가 인상은) 더 많은 독자의 이탈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