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이 본격적인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시공사를 다시 찾아야 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 컨소시엄(시공사) 간의 시공 하도급 계약 협상이 15개월간의 줄다리기 끝에 최종 불발되면서다.
한수원은 29일 대우건설 컨소시엄과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시공계약 협상을 공식 종료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체코 발주사(EDU II)와 주계약을 체결한 이후 양사는 최고경영자(CEO) 면담 2회, 실무회의 78회, 이견조정위원회 11회 등을 거치며 협상을 이어왔으나 공사대금과 계약 방식, 역무 범위 등 핵심 조건에서 끝내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양측의 갈등은 입찰 규모가 원전 1기에서 2기로 확대된 시점부터 예고됐다. 앞서 2018년 8월 사전 선정된 시공사 컨소시엄과 한수원은 2022년 11월 최초 입찰과 2023년 10월 수정 입찰 당시 두코바니 5호기(1기) 건설에 대한 가격과 '총액확정' 조건에 합의했다.
그러나 체코 정부가 두코바니 5·6호기(2기) 동시 건설로 사업 규모를 확대하면서 2024년 4월 최종 입찰서 제출 단계에서 시공사가 단가 변경과 '물량정산' 방식을 요구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시공비·정산방식 간극 좁히지 못해
가장 첨예하게 맞선 지점은 시공비와 정산 방식이었다. 한수원은 최초 입찰 때 시공사가 제안했고 UAE 원전과 다른 '팀코리아' 협력계약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총액확정 계약(기본설계 시점 기준물량 토대)' 방식을 고수했다.
협상 과정에서 시공물량 현실화를 위해 기준 시점의 물량 증가를 가정해 금액을 상향 조정하고 계약 시점이 아닌 기본설계 승인 시점에 총액을 확정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으나 대우건설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시공사 측은 상세설계 시점의 물량을 기준으로 증가 물량을 정산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다며 맞섰고 한수원이 설계 책임과 부지 제공 책임 등을 시공사에 전가하고 일방적인 감액을 요구한다고 주장해왔다.
공사비 적정성 검증과 역무 범위를 둘러싼 불신도 깊었다. 한수원은 공사비 내 리스크 비용 중복 계상을 막기 위해 직접비·간접비 구분과 세부 산출 근거를 요구했으나 시공사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검증에 난항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우건설이 협상 과정에서 원자로 내장품·터빈발전기 설치 역무를 한때 거부하거나 문화재 조사, 토공 역무 등에 과도한 제안가를 제시하며 직접 발주를 요구하는 등 업무 수행을 기피했다는 게 한수원 측 지적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저가 수주 및 웨스팅하우스(WEC) 합의 비용 전가설'에 대해 한수원은 강하게 선을 그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두코바니 5·6호기 건설 계약금액은 2025년 6월 기준 약 27조원(4220억 코루나)으로, 2개 호기 비교 시 UAE 바라카 원전 대비 약 2.62배 높고 물가상승률(55%)을 반영해도 1.68배 높은 수준"이라며 "최근 국내 사업인 신한울 3·4호기와 비교해도 약 2.4배 높다"고 반박했다. 또 웨스팅하우스 관련 비용 역시 기존 사업비 내 재원 조정을 통해 지급되는 사안으로 시공비 협상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체코 9월까지 계약 마무리 압박…한수원 내년 7월까지 시공사 선정 계획
더 큰 문제는 체코 정부와의 신뢰 관계와 향후 사업 일정의 안정성이다. 체코 정부와 발주사는 당초 지난 9월 말까지 시공사와의 계약을 마무리하라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특히 협상 장기화로 시공사의 설계 하도급 관리와 관련 시공문서 제출이 지연되면서 체코 측에서도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한수원은 지난 20일 열린 한·체코 산업부 장관 간 제3차 두코바니 이행점검협의체(DSC)에서 10월 말까지 협상 결론을 내겠다는 계획을 공유했고 대우건설의 '12월 말 협상 기한 연장' 요청이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고 판단해 이날 협상 종결을 못 박았다.
현재 팀코리아 내 다른 핵심 하도급 계약은 순항 중이다. 한국전력기술(종합설계용역)과 두산에너빌리티(원자로설비 및 터빈발전기 공급)는 지난해 12월 총액확정 방식으로 계약을 마쳤으며 한전원자력연료(원전연료)와 한전KPS(시운전정비)도 내년 상반기 체결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상 시공 분야만 공백 상태로 남은 셈이다.
새로운 시공사 선정 절차를 감안하면 남은 시간은 빠듯하다. 두코바니 원전은 2027년 4월 건설·건축 인허가 절차를 거쳐 2028년 1월 건설부지 준비공사(부지정지)에 착수하고 2029년 11월 본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수원은 기존 수의계약 방식을 국가계약법에 근거한 경쟁입찰로 전환해 △2027년 1월 잠재 시공사 대상 사전설명회 △2027년 4월 입찰공고 △2027년 7월 낙찰자 선정 및 계약 체결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이번 경쟁입찰에는 기존 시공사인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해 지난 2018년 사전 선정 당시 경쟁했던 현대건설·삼성물산 등 자격 요건을 갖춘 모든 건설사에 참여 기회를 열어둘 방침이다.
대우건설 법적 소송 가능성…한수원, 시공사 공백 업무 직접 수행
한수원은 내년 7월까지 약 9개월간 이어질 시공사 공백기 동안 인허가와 설계 차질을 막기 위해 비상 수행 체계를 가동한다. 부대설비 설계와 중량물 운송로 설계·개발 등은 별도 계약으로 발주하고 부지 정보검증은 기존 유사 계약을 활용하며 공정관리 문서 작성과 임시숙소 대책 등은 한수원이 직접 수행하기로 했다.
다만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 속에 법적 분쟁이라는 뇌관이 남아 있다. 시공계약 협상 종료와는 별개로 2018년 체결한 공동협력협약 해지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시공단이 이미 설계·시공 준비작업과 체코 현지 사전공사를 일부 진행 중이어서 기수행 비용 정산과 성과물 인계를 둘러싼 진통이 불가피하다.
대우건설 측이 소송이나 입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수원은 기수행 역무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보상하되 법적 대응과 신규 시공사 선정 절차를 병행해 전체 사업 공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