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14억' 공공임대와 '보편' 공공임대

엄성원 건설부동산부
2026.09.07 05:00

강남권 공공임대(장기전세)도 10억 시대
"부모 도움 없인 못 들어가"…반복되는 금수저 논란
취약층 주거 복지→보편적 임대정책 변화 필요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재명 정부 부동산 종합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집값안정과 주거안정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6.7.22/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13억8840만원, 12억6360만원, 11억9340만원, 11억7000만원, 11억4660만원 .'

7일부터 입주자 모집 접수가 시작되는 서울시 장기전세주택(미리내집)의 전세 보증금이다. 말 그대로 억소리 나는 수준이다. 진짜 공공임대가 맞나 싶을 정도다.

장기전세주택은 공공주택특별법에 의거해 시세보다 싼 가격에 최대 20년간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서울시는 두가지 유형의 장기전세주택을 공급 중인데 이 중 출산을 계획 중인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공급되는 유형이 미리내집(장기전세Ⅱ)이다.

장기전세주택은 시세 80% 이하에서 보증금이 결정된다. 그런데 전세가격이 계속 오르다 보니 선호도가 높은 강남권이나 목동 아파트의 경우 이 시세의 80%마저 보통의 무주택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돼버렸다.

참고로 KB부동산 기준 8월 서울 아파트 전세 중위가격(전체 주택을 가격순으로 나열한 후 나온 그 중간값)은 6억3000만원이다. 강북 14개 자치구 중위가격은 5억6500만원, 강남 11개 자치구 중위가격은 7억1167만원이다. 예로 든 미리내집의 보증금 수준은 강남 자치구 중간값과도 차이가 상당하다. 주변 2~3개 단지의 전세계약금액만을 가격 산정 기준으로 활용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장기전세는 주거 복지 차원에서 지원되는 만큼 수분양자의 소득과 자산 수준에 대한 제한이 존재한다. 유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용면적 60㎡ 이하의 주택을 공급받을 경우 소득이 최대 1056만원(미리내집 맞벌이)을 넘지 말아야 한다. 전용 60㎡ 초과의 경우 소득이 최대 1173만원(맞벌이)이하여야 한다. 총자산가액 기준은 자녀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6억2000만원의 기본 자산 기준에 2자녀까지 자녀 1인당 약 10%씩 자산 기준을 늘려주는 식이다.

결국 6억~7억원의 자산을 가진 무주택 가구에게 자산 규모의 2배 가까운 전세를 제공하면서 소득 제한까지 적용하는 셈이다. 자산과 소득 중 어느 하나만 많아도 입주 불가다. 14억원에 근접한 전세보증금치곤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다. 그러다 보니 또 다시 금수저 논란이 반복된다. 장기전세마저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부만이 접근 가능한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소수의 고소득자나 고액 자산가를 제외하곤 뛰는 집값은 물론 전셋값 상승도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다. 주거난이 일부 취약계층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청년층, 중장년층 가릴 것 없이 다수 사회 구성원이 직면한 현실의 난제다. 사정이 이런데 주거 복지라는 단어에 얽매여 오히려 특정 계층만이 접근 가능한 고액 공공전세를 계속 안고갈 필요가 있을까?

정부와 서울시 모두 공공임대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을 이제 막 준비 중이다. 정부는 자산과 소득 기준을 대폭 완화한 형태의 보편형 공공임대에 내년 6조2000억 여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기존 공공임대가 저소득층을 비롯한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보편형 공공임대는 더 다양한 소득과 자산 계층의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미리내집 입주 현장을 찾아 중산층을 위한 공공임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몇 년 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거지' '빌라거지' 등의 말이 유행한다고 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주거 형태와 방식을 기준으로 또래를 가름하게 된 게 비단 아이들만의 책임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소득층에게만 임대주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오래된 철학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엄성원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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