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풀어줘"...간 큰 보이스피싱범, 변호사 끼고 금감원 민원

김미루 기자
2026.09.02 16:44

피싱 이용 계좌, 지급정지 풀어달라/그래픽=김현정 기자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묶이자 금융사기 연루 계좌의 명의인 측이 변호사까지 선임해 금융감독원에 "지급정지를 풀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급정지 근거와 금융회사·금감원 간 연락 내역을 정보공개청구로 요구하는 것은 물론, 일부는 지급정지를 신청한 피해자의 신원까지 알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금감원 금융사기대응 관련 부서에서는 담당자 한 명이 하루 평균 80건 안팎의 민원을 검토한다. 자신도 모르게 계좌가 범죄에 이용된 명의인이 지급정지 해제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이스피싱 조직에 계좌를 넘긴 명의자나 금융사기 가해자 측이 제기하는 민원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범죄수익이 묶여버린 통장 지급정지를 풀기 위해 금감원에 구체적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계좌가 어떤 이유로 지급정지됐는지, 지급정지의 법적·사실적 근거가 무엇인지뿐 아니라 지급정지 과정에서 금융회사와 금감원이 어떤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관련 자료를 요구한다. 일부에서는 지급정지를 신청한 피해자가 누구인지까지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변호사가 직접 대리인으로 나서는 경우도 나타난다. 정보공개청구인의 이름을 법률정보 사이트에서 확인하면 현직 변호사로 확인되고, 청구서에 적힌 주소도 자택이 아니라 변호사사무실이나 로펌으로 돼 있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단순한 권리구제를 넘어 피해자에게 합의를 압박하거나 향후 수사나 분쟁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는지 청구 내용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사기 연루자가 범죄수익이 묶인 계좌의 지급정지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민원이나 정보공개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3분마다 계좌 하나 지급정지…범죄수익 회수 노리는 범죄자들

범죄조직 입장에서는 지급정지가 범죄수익 회수 여부를 좌우한다. 피해자가 보낸 돈을 여러 계좌로 옮기는 과정에서 금융회사가 보이스피싱 통로로 의심되는 중간 계좌를 지급정지하면 남은 돈을 더 이상 빼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권에서 이뤄지는 지급정지 규모는 상당하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20개 금융회사의 지급정지 건수는 2024년 7만151건에서 지난해 12만8374건으로 83% 급증했다. 올해 1분기에도 4만4068건이 이뤄졌다. 하루 평균 약 490건, 3분마다 1개의 계좌를 지급정지한 셈이다. 올해도 1분기에만 지난해 연간 지급정지 건수의 34%가 발생했다.

지급정지는 피해금을 보전하기 위한 핵심 장치이기도 하다.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1조7731억원 보이스피싱 피해액 중 환급된 금액은 3986억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22.4%가량이 피해자에게 돌아갔다.

지급정지 계좌 명의인 중에서는 중고거래를 하다가, 물품 대금을 내다가 자금세탁에 이용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민원이나 이의제기 자체를 제한하기는 어렵다. 금감원은 이같은 사정을 고려해 선의의 통장주와 지급정지 해제를 노리는 범죄 연루자를 구분해 관련 민원과 정보공개청구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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