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디어의 접근이 극도로 제한된 북한 조선소와 열병식 예행연습을 꾸준히 찍어온 곳이 있다. 미국 위성영상 업체 벤터(Vantor)다. 지난해 10월 기존 사명이던 맥사(Maxar)에서 벤터로 이름을 바꿨다. 사명 변경과 더불어 사업의 축이 위성·드론·지상 센서 데이터를 하나로 묶어 파는 '공간정보 사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머니투데이와 만난 송현 벤터 한국대표는 "영상을 별도로 판매하던 사업에서 공간정보 종합 솔루션업체로 진화하고 있다"며 "국가나 민간기업 등 고객이 위성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도 정보 운용의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벤터는 10기의 위성을 고도 500㎞의 저궤도(Low Earth Orbit)에 띄워 매일 600만~700만㎢의 지상을 촬영한다. 해상도는 30㎝급, 촬영한 영상의 한 점이 지상의 30㎝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맥사' 시절엔 주로 위성 영상을 단건으로 판매하는 사업 위주였다. 그런데 고객의 요구는 영상을 넘어선 '공간 정보'로 바뀌어가고 있다. 송현 대표는 "단순히 특정 장소에 어떤 대상이 있는지를 넘어 그 대상이 1시간 전 어디 있었는지까지 담은 '행동 양상'을 종합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며 "이러한 정보를 담은 시계열 자료를 고객들이 원하고, 이를 위해 위성 영상과 지상 데이터를 융합해 하나의 공간정보로 판매하는 게 현재 벤터의 주 업무"라고 밝혔다.
벤터는 일반 소비자에게 낯 익은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이미 벤터의 위성이 찍은 사진, 위성으로 파악한 공간 정보는 수많은 소비재에 녹아 있다. 구글맵 등 지도·내비게이션 앱에서 위성지도 기능을 켜놓으면 하단 출처에 '맥사' 또는 '벤터'라는 이름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송 대표는 "벤터의 공간 데이터를 쓰는 글로벌 내비게이션 앱 사용자는 10억명 이상으로 집계된다"고 전했다.
벤터의 위성 영상은 세계 곳곳에서 공신력을 인정 받고 있다. 벤터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활용하는 기초 지리공간정보의 90% 이상이 벤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미 국가지리정보국(NGA)과는 7000만달러(약 956억원) 규모의 옵션 연장 계약을 맺고 250개 이상 기관이 쓰는 지리공간정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부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등이 국방·정보 목적으로 활용 중이다. 위치정보 신호를 끈 채 해상에서 불법 조업하는 선박들을 추적하는 서비스 '매리타임 센트리(Maritime Sentry)'는 일부 국가에서 선박 나포의 법적 근거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벤터는 보유한 위성과 기술력을 통해 자체 위성군 확보가 부족한 국가들에 독자적인 공간정보 주권, '소버린 인텔리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송현 대표는 "정보 주권을 위해서 꼭 국가 소유의 위성 체계가 필요한 건 아니고, 독자 감시·모니터링 체계를 확보하는 게 본질"이라며 "이를테면 벤터의 위성이 한반도 상공을 지나갈 때는 해당 위성의 통제권을 온전히 한국에 넘기는 식"이라고 전했다. 소유권이 아니라 통제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접근은 유럽에서 먼저 구체화됐다. 벤터는 지난 6월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과 독일·유럽의 소버린 공간정보 체계 구축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벤터의 위성·공간정보 기술에 현지 방산기업의 역량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벤터의 영상은 광학카메라 촬영을 통해 확보된다. 최근 급성장하는 합성개구레이더(SAR) 영상에 비해 구름 등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는 단점도 있지만, 특정 색상과 글씨 등을 식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송 대표는 "불법활동 선박을 나포할 때는 선박 색깔과 선체번호 등을 들이대야 한다"며 "SAR 영상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바라봤다.
송 대표는 위성영상 자체보다 분석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상을 구매해 데이터를 쌓아놓고도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지 못하는 사례를 종종 접한다"며 "그런 고객사에는 위성 영상보다 모니터링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린다"고 말했다.
벤터의 확장은 위성 밖으로도 향한다. 지난 7월 공개한 '월드뷰 3D'는 고객이 위성에 촬영을 지시하면 24시간 이내, 빠르면 6시간 안에 갱신된 3D 지형정보를 제공한다.
이 3D 지형 데이터를 드론에 적용한 것이 '랩터'다. 드론에 3D 모델을 저장해두고 카메라 영상과 실시간으로 대조해 위치를 잡는다. GPS 신호 없이 드론의 현재 위치와 지상 좌표를 산출한다. 송 대표는 "저장된 3D 모델과 촬영 영상 두 개만 대조하기 때문에 외부 노이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원천적으로 재밍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GPS 교란 대응은 최근 군과 드론업계의 공통 과제로 꼽힌다.
벤터는 2027년 고빈도 관측용 '펄스', 2029년 20㎝급 초고해상도 '밴티지' 위성군을 추가할 계획이다. 송 대표는 "작전·보안 상황에 쓰이는 고가의 서비스 외에도 고객군별로 예산 맞춤형 제품을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다"며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확한 공간정보 데이터를 제때 갖도록 하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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