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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결산 시즌이면 상장사 공시팀은 야근이 불가피하다. 감사보고서 속 숫자와 표, 주석마다 정해진 전자표식을 일일이 찾아 붙여야 하는 XBRL(국제표준전산언어) 공시 때문이다.
XBRL은 재무정보를 컴퓨터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시하는 것을 뜻한다. 감사보고서 속 숫자마다 '이 값은 영업이익이다', '이 값은 유형자산 취득원가다' 하는 전자 이름표(태그)를 붙이는 작업이다.
하지만 태그 종류가 수십만 개에 달해 전문 회계사에게 맡겨도 오류가 나기 일쑤고, 틀리면 정정공시와 과징금을 감수해야 한다. 법정 의무로서 피할 수 없는 이 고된 작업을 AI(인공지능)로 자동화해 기업 회계·재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어 주목된다.
XBRL 공시 자동화 솔루션 '인벡터(Invector)'를 운영하는 토글캠퍼스다. 배규태 토글캠퍼스 대표는 "회계팀 실무의 모든 데이터는 엑셀에서 시작한다. 기존 솔루션들은 별도의 편집기를 쓰도록 해 오히려 작업량이 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감사보고서가 표준화돼 있다고 하지만, 같은 개념을 두고도 기업마다 표기가 전부 다르다"며 "인벡터는 실무자가 쓰는 환경을 바꾸지 않고 그 위에 자동화를 얹었다"고 설명했다.
인벡터의 AI 엔진은 표의 구조, 숫자, 맥락은 물론 회계적 의미까지 정확히 파악한다. 열(列)에 있는 퍼센트(%) 단위를 보고 아래 숫자를 백분율로 인식하거나 합계 열의 계산 구조를 스스로 이해하는 식이다.
특히 금융감독원의 최신 규정을 내장해 실시간 오류 검증과 자동 태그 추천 기능을 제공하고, 문서 간 정합성까지 검증한다. 또 세법, 회계기준서, 판례 등 방대한 데이터를 참조해 복잡한 세무·회계 질의에 답변하고 최적의 절세 방안이나 세금 신고 전략도 제안한다.
배규태 대표는 "인벡터의 AI 엔진은 1000셀 이상의 공시 문서에서 평균 97%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며 "큰 회계법인들 모두 정정공시 이력이 있지만 지금까지 정정공시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곳은 우리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벡터를 도입하면 기존 대비 비용을 5분의 1 수준까지 낮추고 100시간 이상 소요되던 업무를 10시간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며 "작성 기간으로 따지면 회계법인에 맡겼을 때 2~3주 걸리던 일이 기업 직접 수행 시 이틀 만에 끝난다"고 했다.
대표적인 고객사로는 셀트리온제약, 종근당, 메가스터디 등이 있다. 특히 제약 업종의 고객사가 많다. 배 대표는 "시가총액 상위 30위권 제약사 중 절반 이상이 인벡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XBRL 공시 시장은 아직 초입이다. 국내 상장사 2600여곳 중 XBRL 공시를 적용 중인 곳은 1000여곳 정도다. 정부가 자산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해 왔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아직 XBRL 공시가 적용되지 않은 나머지 기업들에 큰 기회가 있다고 봤다.
그는 "앞으로 XBRL 공시를 시작해야 할 기업들은 규모가 더 작은 곳들"이라며 "그런 기업일수록 비용 부담 때문에 회계법인에 맡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욱 인벡터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글캠퍼스는 구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GFSA)'를 통해 서비스 보안과 안전성을 더욱 고도화할 수 있었다. 배 대표는 "인벡터가 다루는 정보는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재무 데이터"라며 "보안은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라고 했다.
이어 "구글 측 보안 전문가들이 인벡터의 아키텍처를 리뷰하면서 '이런 부분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피드백을 줬고 이를 대폭 반영했다"며 "분산돼 있던 시스템도 이 과정에서 구글 클라우드 환경으로 일원화해 운영 비용을 약 30%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토글캠퍼스가 노리는 시장은 회계법인이 수행하고 있는 자문 업무(PA, Private Accounting) 전체다. '감사'처럼 회계사 자격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을 제외하고, 2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PA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 나간다는 목표다.
배 대표는 "지금은 PA 시장의 일부에만 진입한 상황"이라며 "나머지도 충분히 할 수 있다. IPO(기업공개)나 M&A(인수합병) 자문을 비롯해 반드시 회계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영역에서 우리가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해외 진출의 경우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1위 공시 솔루션 기업 '워키바(Workiva)'가 한국 규제의 복잡성 탓에 국내 진출을 포기했던 만큼, 우선 국내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한 이후 글로벌 확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배 대표는 "국내 B2B 솔루션 기업들이 무턱대고 해외로 나갔다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며 "한국에서 최대한 성과를 내고 충분한 레퍼런스를 만든 이후에 해외로 나가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벡터를 통해 기업이 회계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를 혁신한다는 목표다. 지금은 공시와 XBRL, 주석 작성, 검증까지 상당 부분을 외부 용역에 맡기는 구조인데 비용이 클 뿐 아니라 내부에 노하우가 쌓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배 대표는 "데이터를 옮기고 맞추고 검증하는 작업은 기술로 해결하고 사람은 판단과 해석에 집중해야 한다"며 "보고서를 표준화하면 기업 간 비교가 수월해지고 영문 번역도 잘 된다. 그만큼 해외 자본 유입과 투자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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