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노사의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이 노동조합원 찬반투표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갔다. 사측이 초과이익분배금(PS)의 자기주식(자사주) 지급에 따른 부담을 낮추기 위해 현금 선택권과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 보전 등 보완책을 마련했지만 합의안은 부결됐다. 주가가 고점 대비 크게 하락한 상황에서 수억원대 성과급의 현금 지급 요구가 이어지면서 주주 이익보다 임직원 보상을 앞세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사측은 주식 보상에 대한 구성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여러 안전장치를 내세웠다. 내년 초 지급되는 2026년도분 PS의 경우 구성원이 당해 지급되는 주식 40%를 현금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현금 지급분 40%를 더하면 최대 80%를 현금으로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새로운 지급 방식의 적용을 1년 미룬 셈이다. 주식 수 역시 연간 잠정실적 공시일과 PS 현금 지급일, 주식 지급일 종가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을 기준으로 정하도록 했다. 지급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을 보전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구성원 사이에서는 지급 방식 자체를 바꾸는데 대한 반발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는 지난해 PS 상한을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활용하는 체계를 10년간 유지하면서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 1년 만에 주식 지급 방식으로 변경하는데 대한 거부감이 표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복지·처우의 세부 조건을 놓고도 불만이 나왔다. 복지 포인트 하이웰을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지급해 소득세 부담을 줄이기로 했지만 상품권 구매가 불가능해지는 등 사용처가 제한되고, 주식 손실 보전금에 따른 세금 문제도 쟁점이 됐다.
잠정합의안을 둘러싼 내부 논란과 함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6월 22일 고점인 291만9000원에서 최근 50% 가까이 급락했지만 올해 실적을 토대로 산정되는 성과급 규모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증권가가 전망하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250조원)에 PS 재원 비율 10%를 적용하면 전체 재원 규모는 25조원에 달한다. 1인당 평균 PS는 약 7억원(세전)으로 추산된다. 주가가 사실상 반토막 난 상황에서도 수억원대 성과급의 전액 현금 지급을 요구하는데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주주는 기업가치 하락 위험을 직접 부담하지만 잠정합의안에는 임직원의 자사주 성과급 수령에 따른 주가 하락 손실을 줄여주는 장치가 포함됐다. 성과급 재원도 영업이익의 10%로 정해져 있어 실적이 늘어날수록 임직원에게 돌아가는 보상 규모가 연동해 늘어난다. 그럼에도 재협상에서 현금 지급 비중이나 추가 보상이 확대될 경우 주주와 임직원이 부담하는 위험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주주는 주가 하락 위험을 감수하는데 임직원에게는 성과뿐 아니라 주가 변동에 따른 위험까지 보전해주는 '주객전도'식 보상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면 주주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시선도 차가워질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AI(인공지능)용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국가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황에서 수억원대 성과급의 지급 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지면 노조가 감당해야 할 여론의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
다만 이날 나온 노조원 찬반 투표수 격차가 25표에 불과해 재협상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다. 업계에서는 기존 잠정합의안의 틀을 전면 수정하기보다 사측이 타결금 등 추가 보상을 제시하거나 일부 조건을 조정하면 다음 투표에서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무기술직 노조의 투표 결과와 별개로 전임직 노조와 사측은 재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찬반이 사실상 절반으로 갈린 만큼 재협상에서 사측이 추가적인 보상안을 제시하면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며 "노사 모두 갈등 장기화에 따른 부담이 큰 만큼 추가 조건을 조율하면 다음 투표에서는 합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