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조선사에 해군 함정용 적외선신호 감쇄장치(IRSS)를 납품하는 협력업체가 약 60억원의 원가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방위사업청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에서 수입한 장비 일부를 직접 제조한 것처럼 원가계산자료를 작성해 수입가격과 제조비를 이중으로 반영했다는 혐의다.
23일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방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사청은 지난 3월10일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해군 함정용 IRSS 납품업체의 방산원가 부풀리기 의혹과 관련한 공익신고 사건을 접수했다. 같은 달 25일부터 27일까지 해당 업체에 대한 1차 현장조사를 실시했으며, 5월6일 청장에게 추진 경과와 조치계획을 보고했다. 이후 5월8일부터 공익신고 내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후 방사청은 지난 8월3일부터 9월23일까지 12명으로 구성된 '부당이득금 산정반'을 편성했다. 방사청측은 "부당이득금 및 가산금 산정반 조사결과에 따라 해당업체가 원가부정일 경우 방위사업법 제58조 및 동법 시행령 제69조에 따라 부당이득금 및 가산금을 환수할 것"이라며 "원가회계심의위원회에서 고발 결정이 날 경우 형사고발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해군 구축함(KDX)과 호위함(FFX), 유도탄고속함(PKX) 등에 설치되는 IRSS다. IRSS는 함정이나 헬기의 엔진에서 배출되는 고온의 배기가스에 차가운 외기를 혼합해 열을 낮추는 장치다. 적외선(열) 신호를 줄이고 적의 탐지장비에 포착될 가능성을 낮추는 일종의 스텔스 기술이다.
신고서에 따르면 A업체는 IRSS의 핵심 장비를 해외에서 수입했지만 이 장비의 일부인 '로어 업테이크'를 직접 제조한 것처럼 원가계산자료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외에서 사들인 부품에 대해 수입 물자대 가격과 직접 제조비 가격을 이중으로 계산하는 방식으로 업체가 약 59억2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는게 요지다. 해당 금액은 FFX-Ⅱ와 FFX-Ⅲ 각 8척, 총 16척을 기준으로 산정된 추정치다.
A업체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HJ중공업, SK오션플랜트 등 함정 건조업체와 IRSS 하도급 납품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들 함정 건조업체가 해당 허위 의혹을 받는 원가계산자료를 검증 과정에서 제대로 확인됐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함정 건조업체들이 해당 장치를 일반공개경쟁이 아닌 특정 업체와의 수의계약을 통해 공급받은 점이 사건 발생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방사청은 하도급계약 중 품목별 10억원 이상 계약에 대해 원가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적정성을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의혹을 계기로 수입장비와 국내 제조품의 원가 산정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수입장비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제조품은 실제 투입된 재료비와 노무비 등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반면 수입장비는 수입가격을 토대로 원가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LIG D&A 뇌물 사건처럼 IRSS 원가 부풀리기 의혹에서도 하도급 구조가 방산비리의 은폐 수단이자 방패로 활용되고 있다"며 "방사청은 원가부정 여부를 철저히 가려 부당이득금은 물론 법이 정한 최대한도의 가산금까지 환수함으로써 하도급을 방패 삼은 방산비리가 발붙일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동시에 경쟁 없이 수의계약으로 납품돼 온 하도급 품목 전체의 원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