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때리고 보자? 과징금·기업조사 폭주…기업들만 멍든다

정진우 기자, 세종=박광범 기자, 유엄식 기자, 세종=오세중 기자
2026.09.07 06:30

[MT리포트]무책임한 '엄벌행정'(上)

[편집자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강력한 규제 권한을 가진 기관이 '일단 때리고 보자' 식의 엄벌주의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과도한 표적 수사 등을 이유로 검찰 수사권을 없앤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와 결이 다르다. 규제 기관의 무리한 조사와 징벌적 제재는 매년 행정소송과 조세불복으로 이어져 정부가 패소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법적 다툼을 거쳐 무혐의, 취소 판결이 나면 막대한 과징금과 세금이 환급되고 이에 따른 가산금까지 국고에서 빠져 나간다. 제재 처분을 받은 기업은 경영 불확실성과 브랜드 가치 실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아무런 승자가 없는 무책임 '엄벌 행정'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짚어본다.

"한번도 경험못한 과징금 10조 시대"...기업 혁신 막는 '엄벌주의'

(서울=뉴스1) 이종수 기자 =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31일 쿠팡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본 소비자 50명에게 1인당 10만 원을 현금 또는 쿠팡캐시로 지급하도록 하는 집단분쟁조정 결정을 내렸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의 모습. 2026.7.3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종수 기자

정부의 과도한 '징벌'이 기업들의 '혁신'을 억누른다. 사정기관들의 '엄벌주의' 기조가 거세지면서 기업들은 움츠러든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를 비롯한 정부 소속 기관들의 칼날 앞에 기업들의 미래 산업에 대한 도전 의지는 꺾이고 성장 동력마저 약화된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제재가 새로운 투자보다 방어에 자원을 집중시켜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국가 경쟁력'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올해 2월 설탕 담합(3960억원)과 5월 밀가루 담합(6710억원), 7월 전분·전분당 담합(7476억원) 등 3개 사건에 총 1조81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공정위의 지난해 과징금 부과액 3400억원의 5배가 넘고 연간 기준 최고 기록이었던 2017년 1조3308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특히 전분·전분당건은 공정위 담합 제재 사건 중 역대 최대 과징금 규모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의 과징금 부과도 역대급이다. 개보위는 지난 6월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과 온라인 정보 무단 수집 등을 이유로 6246억8100만원의 과징금을 쿠팡에 부과했다. 개보위가 부과한 과징금 중 가장 많은 규모다. 금융감독원(금감원) 역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로 올해 2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1조4000억원의 과징금을 의결했는데, 금융위원회(금융위) 반려로 6000억원대로 결정했다.

올해 정부 기관의 과도한 과징금 부과 사례/그래픽=이지혜

이들 기관들이 기업들에게 부과한 과징금은 지난달 기준 3조원을 넘어섰고, 연말까지 의결을 앞둔 굵직한 사건들을 포함하면 올해 과징금 규모는 사상 최대 규모인 10조원을 훌쩍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이런 '엄벌주의' 제재는 기업들이 미래 신산업 투자나 고용 창출 대신 천문학적인 법적 방어 비용을 쓰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 정부는 제재 효과를 높이려는 취지지만 기업이 느끼는 부담과 불확실성은 커진다. 과징금 한도가 높아질수록 기업은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보다 잠재적 제재 규모를 먼저 계산한다. 기업의 관심이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에서 벗어나 법률 검토와 규제 대응으로 이동하면 생태계 전반의 효율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사정기관의 처분이 법원에서 뒤집히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을 행정소송 패소 등의 사유로 다시 환급해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5년 8월까지 기업에 다시 돌려준 과징금은 6250억원이다.

법원에서 최종 무죄나 처분 취소 판결을 받더라도 재판이 진행되는 수년 동안 해당 기업은 '부도덕한 기업'이란 낙인이 찍혀 브랜드 가치에 치명상을 입는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리한 제재가 기업의 생사줄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단 때리고 보는 식의 엄벌주의는 결국 법원에서 처분 취소나 패소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기업에 돌이킬 수 없는 금전적·명예적 손실을 입힌다"며 "국가적으로도 행정력 낭비와 소송 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정위의 무리한 과징금 때리기…"역대 최대 과징금 곧 깨질것"

주요 공정위 과징금 취소 판결 사례/그래픽=이지혜

공정거래위원회의 '때리고 보자'식 과징금 부과 탓에 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판단이 과도하다며 불복하는 기업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법원에서 과징금 부과가 뒤집히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약 1조3500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부과액 3400억원의 4배에 달한다. 설탕 담합(4083억원)과 밀가루 담합(6710억원) 등 두 사건에서만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히 아직 의결서가 공개되지 않아 이번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전분·전분당 담합건은 담합 사건 역대 최대인 7476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위 과징금 확대는 이재명정부 들어 공정위가 물가 안정을 위해 설탕·밀가루 등 먹거리부터 교복·기름 등 전방위 조사를 벌인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정부가 민생물가 안정을 위해 선정한 특별관리품목에 공정위 관리 대상이 포함되는 등 공정위가 물가당국이 됐단 비판도 제기된다.

이런 기조 속에 공정위 과징금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과거 단일 사건 기준 1000억~2000억원 수준이던 고액 과징금이 점차 덩치를 키워 수천억원 단위로 부과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은행 LTV(담보인정비율) △설탕 △밀가루 △인쇄용지 △전분·전분당 등 담합 사건에 수천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업계에선 공정위가 부과한 역대 최대 과징금 기록(2016년 퀄컴 사건, 1조311억원)이 조만간 깨질 것이란 전망이 팽배하다.

실제 공정위는 담합 사건 과징금 부과기준율 하한을 기존 0.5%에서 10%로 20배 올리고, 사익편취(부당지원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사건 과징금 부과기준율 하한을 최소 100% 이상으로 상향하는 과징금 체계를 도입했다. 하도급·가맹·대리점 등 분야의 과징금 기준도 강화했다.

문제는 과징금의 적정성 여부다. 공정위 판단이 과도하다는 기업들의 행정소송이 늘어나면서 법원에서 결과가 뒤집어지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실제 대법원은 최근 '웹소설 저작권 갑질'을 이유로 공정위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부과한 5억4000만원의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또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4월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물량을 몰아줬다고 공정위가 부과한 2349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전부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공정위가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해당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지난해에는 SK실트론 사익편취 사건 관련 SK와 최태원 회장에게 부과한 과징금 총 16억원을 취소하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공정위가 SPC그룹 부당지원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647억원을 전액 취소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정위의 부실 처분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단골 지적사항으로 꼽힌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공정위가 행정소송 패소나 직권 취소 등으로 기업에 다시 돌려준 과징금 누적액(순환급액)은 6247억원에 달한다. 이자 성격의 환급가산금도 474억원에 이른다.

업계와 법조계에선 공정위가 '일단 때리고 추후 법원 판단에 맡기자'는 식으로 과도하게 과징금 제재를 내리고 있단 비판이 나온다.

한 공정위 출신 관계자는 "공정위가 법원 1심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세심한 법리 검토와 과거 심결례 등을 고려해 책임있는 처분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원 조사 100회, 10년치 자료 요구"...'재계 저승사자'의 폭주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운수노동자들의 폭염 및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6.8.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지난 1일 서울 광진구 쿠팡 본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 30여명이 전격 현장조사에 나섰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사전 통지 절차도 생략됐다. 한 기업에 이렇게 대규모로 조사 인력을 급파한 건 이례적이다. 지난달 쿠팡이 공정위 현장조사 절차가 위법하다며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사건의 심문기일 전날이었다. 쿠팡 내부에선 "보복성 조사", "군기 잡기"란 말이 나왔다.

지난달 21일 이커머스 쿠팡이 '재계 저승사자' 공정위의 현장조사를 막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공정위 조사를 거부한 쿠팡은 법원에 취소소송도 제기했다. 그동안 정부 규제 기관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과 결이 다른 행보다.

이는 오랜 기간 쌓인 양측의 갈등이 폭발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이 국내 시장에서 단기간 급성장한 데 따른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고강도 합동조사와 과징금 제재 수위는 과도하다는 게 회사 내부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 본사인 쿠팡Inc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이런 내용을 진술해 양국 외교 갈등으로 번졌다.

지난해 말 고객 정보유출 사건이 터진 이후 당시 쿠팡 본사였던 잠실 한 오피스 건물은 '미니 세종시'라는 별칭이 붙었다. 합동 조사단을 꾸린 정부가 수 백여명의 인력을 현장조사에 투입해서다. 공정위를 비롯해 국세청, 개인정보위원회, 경찰 등 검찰을 제외한 규제 기관이 대부분 참여했다.

이 기간 공정위는 시장감시국을 중심으로 대단위 팀을 꾸려 집중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팀은 쿠팡 임직원을 대상으로 100회 이상의 접견 조사를 진행했고 정보유출 사건 외에도 공정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관련 조사를 병행하면서 수 백여건의 자료를 요청했다. 일부 부서엔 10년 치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부에선 "별건수사 같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이후 쿠팡에 대한 각종 징벌적 제재 처분이 현실화했다. 지난 6월 개보위는 정보유출 사건 제재로 6247억원의 과징금을 결정했고, 같은 달 국세청은 한국 자회사 세무조사를 통해 쿠팡Inc에 2억800만달러(약 3000억원) 규모의 세금을 추가로 납부하라고 통지했다. 올해 하반기엔 끼워팔기 혐의 등에 대해 공정위가 2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작년 하반기 이후 1년여간 쿠팡에 부과된 과징금과 세금 규모가 1조원을 웃도는 셈이다.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일단 납부 이후 환급받는 구조여서 자금 운용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대규모 추가 투자가 필요한 국내외 로켓배송 물류망 구축이 지연되면 회사 성장이 둔화되면서 지방 고용 위축, 중소 납품사 물량 축소 및 대금지급 지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쿠팡에 대한 경제적 제재 규모는 현 정부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24년 6월 PB(자체 브랜드) 검색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162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건 직전까지 쿠팡에 부과한 단일 사건 기준 가장 큰 금액이었다. 직전까지 과징금 액수가 가장 컸던 사건은 2021년 8월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건으로 32억원대였는데 이 사건도 2심 행정소송에서 쿠팡이 승소해 전액 환급됐다.

쿠팡 제재 과징금 규모가 이전보다 수십 배 늘어난 건 회사의 매출 규모가 커진 측면도 있지만, 지난해 정보유출 사태 이후 자체 조사와 보상안 발표 등으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공정위가 현장 조사부터 전원회의 결정까지 수사와 1심 판결을 아우르며 제재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로우키' 전략 외엔 별다른 대응책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반복적 산업재해 △불공정 거래 등 법 위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넘어 잘못하면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이 들 만큼 강도 높은 징벌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 규제 기관의 고강도 제재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국세청, 상반기 세무조사 '공표' 전년比 4배 급증…조세불복도 ↑

이미지=챗Gpt 생성.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3년간 국세청의 비정기 세무조사(특별조사)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무조사 관련 보도자료도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대비 약 4배까지 증가했다.

물론 기업의 불법적 탈루 혐의 등을 세밀하게 조사한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때리고 보자'는 무더기 세무조사에 대한 반발도 적잖다. 조세불복 소송이 잇따르는 이유다. 나아가 불복 소송에서 정부 패소 판결이 이어지면서 과세당국의 체면도 구기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비정기 세무조사는 2928건에서 2024년 3095건, 2025년 3323건으로 증가세다.

특히 올해 상반기 국세청의 세무조사 관련 공표(발표)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임광현 국세청장 체제가 시작된 이후의 변화다. 올해 상반기 국세청의 정기, 비정기 세무조사 건수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국세청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세무조사 관련 보도자료 공표 건수만 봐도 전년 상반기와 차이가 뚜렷하다.

'제대로 조사하라'며 엄정한 세무조사에 방점을 찍은 강민수 전 국세청장 체제에서 2025년 상반기 세무조사 발표 및 보도자료는 총 3건이다. 일반적으로 조사국이 꼼꼼히 살핀 후 조사 결과를 밝히던 조사국 브리핑은 이슈별로 분기에 1번 꼴이었다.

이후 이른바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사4국장을 비롯 조사국장만 6번 지낸 '조사통'인 임광현 현 청장이 지난해 7월 취임하면서 강력한 세무조사 확대는 이미 예견됐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해 7월부터 연말까지 세무조사 브리핑 및 보도자료는 6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배로 껑충 뛴다. 임명되자 마자 세무조사 확대에 나선 것이다. 올해 들어선 9월초까지 세무조사 관련 내용을 12건 발표했다.

국세청은 조사내용 공개라는 메시지를 통해 탈루혐의 등에 대한 경고성 압박을 이어 왔다. 이런 맥락에서 세무조사 관련 공개적 '엄포'(발표)의 증가는 '불법 기업 옥죄기'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불법적 행위에 대한 엄정한 조사는 환영받을 일이다.

문제는 세무조사 발표가 급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특정 이슈에 대한 메시지를 내면 국세청이 즉각 세무조사 착수·결과 발표를 연이어 내고 있어서다. 정부 메시지에 정책 보조 맞추기라는 점에선 일견 수긍이 가지만 너무 잦은 즉각 대응이 정부 방향성에만 치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세청이 지난 3일 발표한 공공입찰 비리 브리핑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반부패정책협의회(지난달 21일)를 열고 공공계약 비리, 보조금 부정수급 등 각종 부패에 대한 전방위 대응을 지시한 지 10일 지난 시점에 국세청이 주간계획에도 없던 공공비리 입찰 브리핑을 급하게 껴넣었다. 청와대에서 메시지를 내자 또 다시 국세청이 반응을 보인 모양새다.

국세청 관계자는 "기존 조사와 같이 조사는 이미 지속적으로 진행돼 오던 것"이라며 "실무자의 실수로 주간계획에 빠진 것일 뿐 급하게 브리핑을 포함시킨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세청은 줄곧 청와대 메시지 후 바로 반응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발표된 주식시장 불공정 탈세자 세무조사(7월), 강남3구 등 고가 아파트 취득 외국인 탈세자(8월), 원자재값 상승 핑계 생활물가 밀접 업종 탈세(9월), 한강벨트 등 초고가 주택 세무조사(10월), 티켓팅 암표업자(11월), 가격담합 시장교란행위(12월) 등 청와대 메시지가 나오자마자 국세청이 발표에 나선 사례다.

올해 역시 1월부터 대형베이커리 상속 실태(확인)부터 8월 황제사택 조사 발표까지 상반기 내내 청와대 메시지 이후 즉시 이뤄진 발표다.

과거 1년 계획안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국세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엄중한 세무조사라는 긍정적인 시각보다 정부와 발맞추기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불복 소송과 과세당국의 패소도 잇따르고 있다.

일례로 올해 세무당국이 SM엔터테인먼트에 부과한 세금 중 약 129억원을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SM엔터테인먼트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에게 지급한 액수가 너무 크다는 과세당국의 논리에 따라 부과한 법인세 소송에서 국세청이 패소한 것이다.

또 넷플릭스코리아의 경우 1심 패소라 최종선고는 아니지만 부과된 세금 762억원 중 687억원에 대한 취소 판결을 받아냈고 구글코리아도 올해 5월 1500억원대 법인세에 불복해 낸 행정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한국오라클이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3100억원대 법인세 소송에서도 국세청이 패소하면서 이미지가 실추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나 개인의 여러 문제에 대한 국세청의 엄격한 세무조사에는 찬성하지만 급하게 이뤄지는 조사와 공표는 국세청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무리하게 진행될 경우 허점이 발견될 수 있고 결국 불복에 이어 패소라는 뼈아픈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다른 국세청 관계자는 "세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법과 원칙에 따라 어느 시기나 일관성 있게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다만 편법과 탈세에는 강력대응한다는 메세지를 확실히 줘 탈세심리를 막기 위해 세무조사 관련 내용을 국민들께 주기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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