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소기업 울리는 정산주기 단축의 모순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2026.09.07 07:00

최근 정부와 국회는 온라인 플랫폼의 거래 대금 정산주기를 기존 60일에서 35일 이내로 단축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미정산 리스크를 방지하고 소상공인의 자금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플랫폼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정산 시점만 앞당기는 규제가 상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태의 본질은 오픈마켓 중개 모델의 대금 유용과 방만한 자금 운용이었다. 엉뚱하게 건전한 거래 생태계 전반의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정책적 모순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정산주기는 플랫폼의 재무 구조와 거래 생태계 전반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법으로 일률 강제하면 수수료 인상이나 거래조건 악화로 이전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 특히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처럼 자체 재고를 확보해야 하는 직매입형 플랫폼의 부담이 치명적이다. 정산기한이 줄어들면 상품이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기도 전에 대금부터 먼저 지급해야 하는 현금 잠김 현상이 발생한다. 유통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재고 회전율이 빠른 소수 대기업 브랜드 위주로 매입 예산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 시장의 구조는 대기업이 독점하는 형태가 아니다. 오프라인 유통은 상위 20% 매출이 나머지 80%를 압도하지만, 온라인은 이른바 롱테일(Long Tail) 구조를 갖는다. 시장의 다양성과 활력은 다수의 중소상공인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거래에서 나온다. 정산주기 단축은 이 긴 꼬리의 생태계를 위축시킨다. 보호의 대상인 중소사업자들이 되레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정산 부담이 초래할 부작용도 심각하다. 유동성 압박을 받은 유통사가 미판매 재고를 반품 처리하거나 재고 부담을 입점업체에 전가하는 '특약매입' 방식으로 전환할 유인이 커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특약매입은 타 거래유형에 비해 불공정거래행위 빈도가 2~3.5배 이상 높고 대금 지연지급 또한 훨씬 높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미국과 중국은 불공정 행위에 사후 제재를 가할 뿐 정산주기를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은 기업 규모, 산업 특성, 재고 회전율에 따라 폭넓은 예외를 인정한다. 정산의 '속도'보다 거래의 '안정성과 자율성'에 무게를 둔다.

중소 납품업체에 절박한 것은 며칠 빠른 대금 수령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판로의 안정성이다. 정산 속도를 강제하다 발주 축소와 거래 단절을 불러올 수 있다. 나아가 국내 플랫폼에 가해지는 규제 압박은 해외 C-커머스 기업에 불필요한 규제 차익을 만들어 국내 중소 제조 생태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정산주기 단축은 지급 속도를 일률 강제할 것이 아니라 플랫폼의 거래 유형과 재무 능력에 따라 차등적·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직매입형 플랫폼에는 재고 회전율 특성을 고려해 충분한 유예기간이나 예외 규정을 두고 순차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혁신의 속도는 규제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정교하고 균형 잡힌 접근만이 중소기업 판로 보호와 플랫폼 산업의 성장을 함께 이루어낼 수 있는 길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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