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진's 종소리]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격적 사퇴에 재계는 놀랐다. "예상 못했다"는 당혹스러운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인사 배경과 향후 정부의 방향성 변화 등 청와대의 속내를 파악하느라 기업 관계자들이 분주해졌다. 주요 그룹 한 관계자는 "좋든 싫든 지금까지 바라보고 달려가던 푯대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라고도 했다.
얼마 전부터 업계에서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 최대 변수는 대한민국 정부"라는 말이 들린다. 그만큼 직접적인 정부 개입이 작용한다는 건데 그 중심에 김 전 실장이 있었다. 그동안 김 전 실장이 각종 현안에 대해 장문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글을 올리면 기업들은 즉각 스크랩해 경영진이 공유하고 내용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3대 메가 프로젝트와 천문학적인 호남 반도체 공장 투자 발표에 이르기까지 속칭 팔이 비틀렸거나 혹은 자발적이거나 간에 김 전 실장의 그립(장악력)에 이끌려 기업들이 따라갔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당황스러운 기업들은 정부의 다음 시그널을 기다린다. 반도체는 물론 피지컬 AI(인공지능) 등 국내외에서 초대형 투자 실행을 앞둔 상황에서 불확실성은 최악의 덫이다. 특히 대미 투자 집행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민관 '원팀 전략'이 절실하다. 국가가 일관된 산업 정책과 전폭적 기업 지원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재계는 갸우뚱하다. 수석급으로 신설된 청와대 메가프로젝트 보좌관 인사에도 그랬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만큼 힘 센 실세가 와서 기업 후원에 힘을 실어주길 기대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전·현직 장관급 인물들을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1급 관료가 발탁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졌다.
법과 제도의 문제는 더하다. 겉으로 아무리 친기업과 투자 확대·일자리 창출을 외쳐도 규제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는 호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업인들이 장외집회까지 열며 결사 반대했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밀어붙이더니 기업의 인력 배치까지 모조리 쟁의 대상이 될 판이다. 경쟁국들과 비슷하게라도 일 좀 하게 해달라는 반도체 R&D(연구개발) 인력 등에 대한 52시간 규제 완화조차 들어주지 않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기대도 접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추격 속에 그야말로 운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 구도에 정통한 백서인 한양대 교수는 "모두 '전쟁'으로 인식하고 달려드는데 우리나라만 안일하다"고 표현했다. 새로운 경제사령탑이 새겨들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