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시대: 슬기로운 의사생활[투데이 窓/김원석]

김원석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
2026.10.02 02:00

의료에 도입된 AI, 생명 구하기도 하지만
환자 표정 살피고 말뜻 한번 더 헤아리며
따뜻한 손 내미는 건 여전히 의사만의 몫

"교수님, 이거 대상포진 맞죠? AI가 그렇게 얘기해서 왔어요."

환자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진료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진단은 벌써 끝나 있었다.

화면 속 피부에는 붉은 반점과 좁쌀만 한 돌기가 모여 있었다. 다음 화면에는 AI(인공지능)의 답변을 갈무리한 글이 떴다. 군집된 붉은 구진, 한쪽에 국한된 병변, 대상포진 가능성, 신경통 후유증. 필요하면 입원할 수도 있다는 설명까지 붙어 있었다. 그는 야외에서 운동한 뒤 등과 가슴이 따갑고 가려워졌다고 했다. AI와 상담한 뒤로는두려움에 잠을 설쳤다고 했다.

직접 살펴보니 땀이 차기 쉬운 곳에 자잘한 붉은 돌기와 긁은 자국이 흩어져 있었다. 통증보다는 가려움이 심했고, 증상이 한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땀띠 같은 겁니다."

"땀띠요? 이게요?"

환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고작 땀띠라니. AI는 어려운 의학 용어를 동원해 입원 가능성까지 알려 주었는데, 내 대답은 너무 짧고 시시했던 셈이다.

나도 교과서 속 병명을 몇 개 꺼내 길게 설명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약을 먹고 바르면서 사흘만 지켜보자고 했다. 그는 못 미더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사흘 뒤, 환자는 신기할 만큼 좋아졌다며 인사를 했다. 돌팔이로 의심받다가 명의 대접을 받는 데 사흘이면 충분했다.

AI의 유용성은 이미 의료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작년에 우리 병원에서는 AI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일도 있었다. 건강검진을 많이 하는 우리 병원은 심전도를 분석해 위험 신호를 찾아내는 AI를 도입했다. 어느 날 60대 수검자에게서 AI가 심근경색 위험을 감지했다. 의료진은 괜찮다는 그를 설득해 응급실로 보냈는데, 불과 몇 분 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치료를 받고 무사히 퇴원했다. AI의 경고를 의료진이 놓치지 않은 덕에 저승사자가 빈손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AI를 모르면 뒤처지고, 쓰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시대다. 나 역시 마음이 급해질 때가 있다.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전공의나 갓 전문의가 된 젊은 의사가 유능한 AI의 도움을 받는다면, 서른 해 가까이 쌓아 온 내 경험은 얼마만큼의 값어치를 지닐까? 성능 좋은 기계 옆에 앉은 구형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럴 때면 땀띠 환자를 생각한다. 내가 AI에 증상을 입력하기까지는 직접 진찰하고, 환자의 말에서 중요한 단서를 가려내는 과정이 있었다. 어디가 불편한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환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런 이야기를 의학의 언어로 옮기는 일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의사의 머릿속에도 나름의 연산 장치가 있다. 내 머릿속 GPU(그래픽처리장치)다. 이 오래된 장치는 환자의 말에 담긴 뜻을 한 번 더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치료실에서 아이가 "아파!" 하고 소리칠 때, 그 말에는 실제 통증과 함께 치료에 대한 두려움, 자신을 데려온 엄마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이 나이에 피부암 수술은 해서 뭐 해"라는 어르신의 말도 정말 수술을 원치 않는 것인지, 수술이 두려운 것인지 오래 진료했다고 저절로 정답을 아는 것도 아니다..

내 머릿 속 GPU가 서른 해 가까이 해 온 일은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아픈 곳을 짚어 주는 환자의 손끝과, 설명을 듣고도 펴지지 않는 표정을 함께 살피는 일. AI가 지금보다 더 똑똑해진다면 그 도움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러면서도 내가 건네야 할 말이 있다고 믿는다.

"쉽지 않은 병입니다. 그래도 저를 믿고 함께 방법을 찾아봅시다." 따뜻하게 손을 내미는 듯한 말에 책임지려는 마음까지 AI에 맡길 수는 없다.

서른 해 가까이 된 내 머릿속 GPU에 그 마음이 남아 있는 한, 아무리 뛰어난 AI가 나와도 내가 할 일은 있을 것이다. 내일도 이 낡은 GPU를 데리고 출근할 생각이다.

김원석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 /사진=양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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