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오세훈 무죄 판결, 정치가 기록을 뒤집을 수는 없다

윤기찬 법무법인 대덕 대표변호사
2026.10.30 05:00
윤기찬 법무법인 대덕 대표변호사

칸트는 인과율을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 경험 이전부터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틀 가운데 하나로 봤다. 원인이 있고 난 뒤에야 결과가 따른다. 이 시간의 순서는 인간 이성이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다. 그 누구도 결과보다 늦게 도착하는 원인을 창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실제로 일어난 객관적 사실을 정직하게 마주하기보다, 입맛에 맞게 기획된 '구성된 서사'를 먼저 세워두고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꿰맞추곤 한다. 지난 23일 서울고법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도 기록과 서사의 간극이 드러났다. 출발은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의 진술이었다. 명씨는 2021년 1월22일 오후 3시30분에서 4시 사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화를 받고 여론조사를 의뢰받았다고 했다. 오 시장의 의뢰라는 '원인'이 있었기에 여론조사라는 '결과'가 탄생했다는 진술이었다.

법정에 제출된 객관적 기록을 보면 순서가 다르다. 미래한국연구소 단체 대화방에는 같은 날 오후 2시20분에 서울시장 보궐선거 설문지가 공유되어 있었다. 명씨가 '의뢰 전화를 받았다'고 지목한 시각보다 최소 70분 앞선 기록이었다. 주문서가 도착하기도 전에 공장은 이미 기계를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재판부는 이런 불일치를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쟁점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명씨의 진술이 유일하다고 짚었다. 그 진술은 객관적 증거와 어긋날 때마다 증거에 맞춰 바뀌었고, 일부 진술만 신뢰할 보강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그러고는 조각마다 시각과 출처를 대조했다. 형사재판이 본래 해야 할 일이었다.

사람의 뇌는 공백을 싫어한다. 맥락이 끊긴 빈칸을 마주하면 억측과 상상으로 채워 넣어 그럴듯한 이야기를 완성하려 든다. 그러나 근대 형사사법의 성과는 증거가 닿지 않는 공백을 억지로 메우지 않고, 빈칸은 빈칸 그대로 남겨두는 냉엄한 엄격성에 있다. 유죄의 입증 책임은 당연히 검사에게 있다. 확증편향의 가혹한 대가는 대체 누가 치르는가. 이번 사건의 피고인은 현직 서울시장이었다.

공적 권력을 쥔 사람일수록 더욱 혹독하게 검증받아야 마땅하다. 법원의 판결 역시 비판의 성역이 될 수는 없다. 판결을 비판하려거든 법관의 성향이나 진영 논리가 아니라, 판결이 근거로 삼은 객관적 기록과 다퉈야 한다. 어떤 증거를 놓쳤고 어떤 추론이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돈은 오갔고 조사는 이뤄졌다는 사정만으로 조사 의뢰와 비용 대납 요청까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정치권력으로 대법원장을 단상에 불러 세울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오후 2시20분을 오후 3시30분 뒤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이번 판결이 값진 이유는 무죄라는 결론보다, 결론에 도달한 법원의 엄격한 방식에 있다. 조각마다 시각과 출처를 현미경 밑에 올려놓고, 조각이 스스로 인과를 말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형사재판이 지켜내야 할 본래의 책무다. 이번 판결은 사실을 대하는 태도를 되묻는다. 정치적 서사는 상황에 따라 요동치지만, 물증으로 새겨진 기록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법정 밖의 정치와 사회가 확증편향의 덫에서 벗어나, 시간의 질서와 객관적 사실 앞에 가장 겸허해질 차례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