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I(인공지능)를 활용한 해킹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시민단체들이 올해 안에 집단소송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비자·시민단체 19곳으로 구성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 제정연대'는 이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소송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 1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집단소송 제도는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 일부가 전체 피해자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는 제도다. 피해자들의 개별적인 소송 부담을 줄이고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난 8월 숨진 고(故) 서영철 전국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연대 대표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김종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보고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며 "회사는 여전히 책임을 부인하거나 피해자의 기저질환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집단소송법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많은 시민이 당연한 권리를 강제로 포기 당하기 전에 집단소송을 통해 권리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집단소송법은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지난 4월 관련 논의가 중단된 이후에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은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디지털정의네트워크 자문위원)는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집단소송법 법안은 15개이고 법안에 이름을 올린 국회의원은 108명"이라고 지적했다.
판결 효력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적용되는 '옵트 아웃' 방식의 도입 여부도 쟁점이다. 재계는 옵트 아웃 방식이 도입되면 기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과도해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에게만 판결 효력이 미치는 '옵트 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옵트인 방식으로는 집단소송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20년간 증권집단소송법이 있었지만 이 법으로 망한 증권사는 하나도 없다"며 "옵트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그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집단소송제 도입이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희우 디지털정의네트워크 활동가는 "최근 발생한 SK텔레콤과 KT, 롯데카드, 쿠팡 등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개별 기업의 보안사고로만 볼 수 없다"며 "기업들이 방대한 개인정보를 수집·보유하면서도 그 규모와 중요성에 걸맞은 보호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정보 유출 기업은 개인정보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유출 사고 발생 시 부담해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보안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다"며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집단소송법 제정연대는 이날부터 시민 10만명 서명 캠페인을 시작했다. 기자회견 직후에는 광화문광장에서 1시간 동안 서명 부스를 열었다. 집단소송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도 진행했다.
집단소송법 제정연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민생경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정보인권연구소 △참여연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이 19개 소비자·시민단체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