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23)과 박재현(20)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KIA 타이거즈가 버틸 힘은 남아 있다. 시즌 막판 다시 살아난 37세 동갑내기 베테랑 김선빈과 나성범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지난 5일 광주 KT 위즈전에서 나왔다. KIA가 1-3으로 뒤진 5회말 무사 1, 2루. 타석에 들어선 김선빈은 처음부터 자신이 해결사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뒤에는 김도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후 이 상황을 돌아본 김선빈은 "뒤에 (김)도영이가 있어서 해결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루타만 치려고 했다. 번트 모션도 나왔는데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서 '죽더라도 혼자 죽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팀 배팅을 생각한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우중간을 가르는 대형 2타점 3루타였다. 주루 코치의 지시도 아니었다. 자신의 판단으로 3루까지 내달렸다. 김선빈의 전력 질주에 KIA는 단숨에 3-3 균형을 맞췄고 이후 역전에 성공해 6-3으로 이겼다.
정작 김선빈은 3루를 향해 뛰면서 후회부터 했다. 그는 "뛰는 순간 '와, 이거 아웃이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뒤에 (김)도영인데 내가 왜 뛰었지?' 싶었다"고 웃었다.
이범호 KIA 감독은 다음 날(6일) 이 장면을 떠올리며 "아직 빠르더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2루타와 3루타는 확연히 다르다.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고 뛰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박재현 효과인가 싶다. 아직 스피드가 살아 있다"고 칭찬했다.
공격만이 아니었다. 김선빈은 KIA가 1-2로 뒤진 4회초 2사 1, 3루에서 김현수의 1, 2루 사이를 빠질 듯한 날카로운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빠졌다면 한 점이 더 들어갈 수 있었던 타구였다.
이 감독은 "그게 빠졌으면 점수로 연결돼 경기가 힘들어질 수 있었다. 옆으로 움직이는 것도, 뛰는 것도 컨디션이 좋더라"며 "지명타자로 며칠 쉬게 해줬더니 확실히 회복력이 좋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관리 속에 김선빈의 방망이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6월 23경기에서 타율 0.214로 힘겨워했던 김선빈은 7월 18경기 타율 0.304, 8월 15경기 타율 0.354로 꾸준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최근 10경기에서도 타율 0.313(32타수 10안타)에 2루타 3개와 3루타 1개를 기록했다.
정작 본인은 아직 만족하지 않는다. 김선빈은 "전반기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결과가 너무 안 나왔다"면서 "지금 조금씩 맞고 있으니까 남은 경기에서 더 결과를 내야 한다. 지금은 한 60~70%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 명의 베테랑 나성범도 뜨겁다. 나성범은 올 시즌 116경기 타율 0.300(416타수 125안타), 27홈런 83타점, OPS 0.929를 기록했다. 2022년 KIA 이적 후 한 번도 밟지 못했던 30홈런까지 단 3개만 남았다. 득점권 타율도 0.351로 해결사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최형우가 떠난 뒤 지명타자 출전 기회가 늘어난 효과도 뚜렷하다. 수비 부담을 덜어주면서 타격 생산력을 극대화했고 OPS는 리그 4위까지 올라섰다.
이범호 감독도 두 베테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감독은 "최근 (나)성범이가 지명타자로 못 뛰고 있는데 이제 성범이 컨디션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 성범이도 (김)선빈이도 컨디션이 좋다. 두 사람이 올 시즌 끝까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팀 성적이 확실히 변한다. 아직 두 사람이 팀에서 해줘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지명타자 배분을 신경 쓰던 사령탑의 걱정이 자연스레 해소될 날이 곧 찾아온다. KIA는 오는 14일 경기가 끝나면 김도영과 박재현, 성영탁(22)을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표팀으로 보낸다. 39홈런 98타점의 중심타자, 15홈런 19도루의 젊은 외야수, 평균자책점 3.12에 7홀드 12세이브를 올린 핵심 불펜이 동시에 약 2주간 빠진다.
6일 종료 기준 KIA는 66승 2무 52패로 4위다. 3위 LG 트윈스와 불과 0.5경기 차이고, 5위 두산 베어스에는 4.5경기 앞서 있다. 시선은 그 위로도 향할 수 있다. 2위 KT와도 4.5경기 차다. KT 역시 아시안게임 기간 소형준(25), 오원석(25), 박영현(23) 등 핵심 투수 세 명이 빠진다. 공백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KIA가 순위를 더 끌어올릴 여지는 충분하다.
김도영의 빈자리가 작을 수는 없다. 김선빈 역시 관련된 질문에 "(김)도영이 빈자리가 안 크다고 할 수는 없다"고 인정했다. 그래도 시의적절하게 김선빈과 나성범이 타격감을 끌어올리면서 KIA는 걱정을 조금은 덜게 됐다. 이젠 두 명의 베테랑이 KIA의 가을 순위 싸움을 지탱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