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당국이 상장사의 공시를 투자자 관점에서 다시 뜯어보고 있다. 중복되는 정보는 덜어내고 투자판단에 중요한 정보는 쉽게 찾고 연결할 수 있도록 공시체계를 손질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도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항목을 60% 이상 줄였다. 잇따르는 해외시장 공시개혁은 무게중심이 '더 많이'에서 '더 유용하게'로 옮겨가고 있다. 2028년 지속가능성 법정공시 도입을 앞둔 한국도 '공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일본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은 지난 4일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글로벌(GPFG)을 운용하는 노르웨이은행투자관리청(NBIM)을 초청해 금융심의회 '디스크로저 워킹그룹' 제6차 회의를 열고, 중복되는 기업공시는 줄이면서 투자자에게 중요한 정보의 질과 연결성을 높이는 방향의 공시제도 개편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NBIM은 일본 상장사들이 공시량은 많지만 중복된 내용들이 많고 정작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구체성과 접근성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NBIM이 일본 상장사 6곳의 공시체계를 분석한 결과 기업의 투자정보가 7~17종의 문서에 나뉘어 있었고, 47개의 중복 영역이 확인됐다. 법정공시 밖에 있는 중요 정보도 32건으로 분석됐다.
일본 정부는 최근 공시체계 손질을 가속화하고 있다. 단순히 공시량을 줄이려는 것은 아니고 불필요한 군살은 빼되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밀도와 연결성을 높이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 5월 회사법상 사업보고·계산서류와 금융상품거래법상 유가증권보고서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체개시'(一體開示)를 기업들이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운영 가이드(FAQ)를 개정했다. 일체개시는 현행 제도에서도 가능하지만 활용을 확산해 기업의 중복 작성 부담을 줄이고 투자자에게 정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EU는 공시항목 자체를 대폭 줄였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개정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을 채택하면서 의무 데이터 항목을 60% 이상, 전체 데이터 항목을 70% 이상 감축했다. 기준을 짧고 명확하게 만들면서 기업당 보고비용도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공시를 줄인다고 중요한 정보를 없애겠다는 뜻은 아니다. EU 집행위는 기업의 행정부담을 줄이면서도 고품질 공시는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가려 공시의 밀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영국도 올해 초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토대로 지속가능성 일반공시(S1)와 기후공시(S2)를 담은 영국 지속가능성 보고기준(UK SRS)을 확정했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상장사 공시를 이에 맞추는 제도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 관련 공시는 의무화하되 새롭게 도입되는 일부 공시에는 '준수 또는 설명'(Comply or Explain) 방식을 적용해 기업 부담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해외 상장사에는 본국에서 이미 적용받는 공시와의 중복을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투자자에게 재무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제공하면서 시장 간 비교 가능성을 높이되 불필요한 중복 공시는 줄이겠다는 취지다.
한국도 2028년 지속가능성 공시의 법정공시 전환을 앞두고 기존 공시체계의 정비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법정공시와 수시공시, 지속가능성 공시 등에 흩어진 중요 정보의 연결성을 높이고, 중복되는 내용은 줄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시항목을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자가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으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