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는 AI에 수조원 베팅…국내 제약사 신약개발 성과는

정기종 기자
2026.09.28 16:38

릴리·엔비디아, 5년간 최대 10억달러 투자…노보노디스크·앤트로픽도 맞손
한미, AI 설계 후보물질 임상·기술수출…JW중외, 계약 이후 후속 물질 발굴

국내 전통제약사들의 인공지능(AI) 신약개발이 임상 진입과 기술수출 등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AI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자체 플랫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실제 확보한 후보물질과 개발 단계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2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최근 AI를 활용해 설계한 비만 신약의 임상 진입과 글로벌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한미약품은 자체 AI 플랫폼 'HARP'를 활용해 비만 신약 후보물질 'HM17321'의 설계 방향을 최적화했다. 단백질 서열 변화에 따른 약리 활성을 예측하고 표적 수용체에 대한 선택성을 높이는 데 AI를 활용했다. HM17321은 미국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달에는 로슈 자회사 제넨텍과 HM17321에 대한 최대 23억달러(약 3조1363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선급금은 1억9000만달러(약 2591억원)이며 나머지는 개발·허가·상업화 단계에 따른 기술료다. AI를 활용한 후보물질 설계가 임상 진입에 이어 기술수출로 연결된 사례다.

JW중외제약은 기존 신약개발 플랫폼을 통해 확보한 후보물질의 기술수출에 이어 AI를 접목한 후속 물질 발굴에 나서는 등 실질적 성과를 내놓고 있다. JW중외제약은 기존 신약개발 플랫폼 '주얼리'와 '클로버'를 기반으로 통풍 치료제 '에파미뉴라드'와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JW1601' 등을 발굴했다. 두 물질은 각각 중국 심시어제약과 덴마크 레오파마에 기술수출됐다. 이어 2024년에는 AI 신약개발 플랫폼 'JWave'를 구축했다. 기존 플랫폼에서 축적한 유전체·화합물 데이터와 AI 모델을 결합한 시스템이다. JWave를 활용해 발굴한 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은 지난해 12월에는 국가신약개발사업 과제로 선정됐다.

대웅제약은 자체 AI 신약개발 시스템 '데이지'(DAISY)를 활용하고 있다. 비만·당뇨와 항암 분야에서 유효물질을 발굴했으며 기존 1년 이상 소요되던 발굴 기간을 약 2개월로 단축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활용 범위도 제형 설계로 넓히고 있다. 대웅제약은 이날 컨소시엄 전체 연구비가 약 53억원인 AI 기반 의약품 제형 설계 플랫폼 개발 국책과제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2029년까지 AI의 설계 결과를 실제 실험으로 검증하는 플랫폼을 개발할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한 기업들도 자체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자체 플랫폼의 현장 적용에 나섰다. 2021년 심플렉스와 중추신경계 질환 신약개발 공동연구를 체결하며 협업으로 첫발을 뗐지만, 현재 종료된 상태다. 이후 올해 7월 구축을 발표한 'AIDDP'에 힘을 싣고 있다.

동아에스티 관계자는 "현재는 AIDDP를 통해 특정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했다거나 연구 성과가 입증된 단계라기보다 실제 연구 현장에서 플랫폼의 활용성과 효과를 검증하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유한양행도 외부 협업에 이어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2019년 캐나다 사이클리카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AI 전문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해왔으며 현재 자체 AI 신약개발 플랫폼 '유니버스'(Yu-NIVUS)를 구축하고 있다. 내년 출범 예정으로 AI 기반 분자 디자인과 선별, 분석을 통합해 신약개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AI 활용 범위를 넓히는 가운데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관련 투자와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지난 1월 엔비디아와 향후 5년간 최대 10억달러(약 1조3636억원)를 공동 투자해 AI 신약개발 연구소를 구축하기로 했다. AI 예측 결과를 실제 실험으로 검증하고, 확보한 데이터를 다시 AI 학습에 활용하는 구조다. 로슈도 3월 엔비디아와 AI 연산 인프라 확대를 위한 협업에 나섰다.

MSD는 지난 4월 구글클라우드와 AI·데이터 활용을 위한 협력을 체결했고 BMS는 5월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를 연구개발 등 업무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달에는 노보노디스크도 앤트로픽과 신약개발 분야 협업을 발표했다.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후보물질 발굴 속도뿐 아니라 예측 결과를 실험으로 검증하고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는 역량도 중요해지고 있다. AI로 발굴한 물질 역시 비임상과 임상시험을 거쳐 약효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지수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특정 질환·약물 분야의 전문성을 AI와 결합하면 후보물질 발굴·최적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자체 데이터를 체계화하는 동시에 대학·병원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데이터 풀을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독자적 데이터 실험 역량을 갖춘 기업은 AI 기업 연구 파트너로서도 협력 기회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데이터 경쟁력이 글로벌 제휴와 기술이전 등 사업적 성과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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