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런치리포트] [너무 특별한 특별사면] (종합)

대통령 특별사면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두차례의 특별사면을 받은 것으로 놓고 여야가 진실게임을 벌이면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제도 자체가 도마에 올랐다.
특별사면권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그동안 유력 경제인 또는 정치인들을 위한 '특혜'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특별사면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의 논의는 15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 '깜깜이' 특별사면
성 전 회장이 어떻게 참여정부에서 두차례나 특별사면을 받을 수 있었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다.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록 공개 규정은 있지만, 장막 뒤에서 이뤄지는 대상자 선정이나 최종 결정 과정은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 아니면 진실을 밝힐 방법도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사면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사면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특별사면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방안에 대해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5일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을 주재로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내달까지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를 위해 법무부는 실무반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에 특별사면 관행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별사면'의 문제가 제도 자체보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다.
국회 한 관계자는 "특별사면 제외 대상을 확대하거나 법령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 부담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특별사면 제도개선 방향은 결국 사면위원회의 투명성 강화와 일부 사면대상자를 정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국회 논의, 15년째 제자리 걸음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3년 특별사면제도에 대한 보고서에서 △사면대상 선정의 형평성결여 △사면 대상·기준·한계 등에 대한 세부규정 부재 △국회 동의 절차 부재 △사면심사위원회 구성 및 구속력 부재 △사후 특별사면 판단 장치 부재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와 관련, 그동안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안이 적잖게 발의됐다. 16대 국회 이후 28건의 사면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19대 국회에서만도 11건이 제출됐다. 19대 국회에 발의된 11건의 사면법 개정안은 △사면 제한 법령 추가 △사면 불가 대상자 확대 △사면위원회 구성 변경 등을 골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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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특별사면 제한 대상을 추가하는 개정안들은 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자·성폭력 관련 범죄 등 특정한 법령을 어긴 자는 특별사면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특경가법은 대개 기업인들과 관련돼 있다.
대통령 친인척이나 정무직 공무원들을 원천적으로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들도 있다. 사면심사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고, 위원 구성을 다양화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는 2013년과 2014년 각각 한차례씩 법안심사를 했을 뿐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있었던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에서는 사면 제외 대상 법률을 추가하자는 여당의 주장과 사면심사위원회의 운영방안 개선을 주장하는 야당의 입장이 부딪히면서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사면법 개정 시도는 16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2003년 원희룡 제주지사가 의원 시절에 발의한 사면법 개정안은 법무부 산하에 사면심사위원회를 두고, 형기 3분의 1을 넘겨야만 사면 대상자가 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헌정질서파괴범 등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후 17대 국회 말미에서야 사면심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안이 만들어졌을 뿐 국회에서 특별사면제도에 관한 논의는 이후 큰 진전이 없었다.
대통령 '특별사면권' 남용의 연대기

사면의 기원은 함무라비 법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에게 사면은 자신이 가한 처벌을 스스로 거두는 행위였다. 절대 군주가 범죄자에 대해 처벌을 내리고, 그 처벌을 면제하는 권한을 동시에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력한 처벌권과 자비로운 사면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권력이 왕권을 뒷받침했다.
사면권은 삼권분립이 정립되면서 다른 의미로 해석됐다. 처벌 권한이 사법부로 넘어가면서 통치권자의 사면권은 사법부의 권한을 간섭하는 조치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국가원수의 사면권은 법의 경직성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자림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 사면법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정부조직법에 이어 만들어진 대한민국 '제2호법'의 의미를 가진다. 일제강점기 부당한 처벌을 받았던 이들을 사면시켜주는 게 새로운 국가 출발에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취지와 달리 이후 사면은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돼 왔다. 건국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시행한 특별사면권은 약 100차례에 달한다. 주로 대통령 취임, 설날, 3·1절, 석가탄신일, 광복절, 성탄절 등을 전후로 단행됐다.

특별사면은 특히 군사정권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25차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18차례 등이었다.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한 당시 특별사면은 정당성이 약한 정권의 권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됐다.
문민정부 이후에는 직전 정부 인사나 대통령의 측근, 친인척 등에 대한 '임기말 사면'이 끊이질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실세였던 박지원 의원과 자신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임기말 사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한달 전 단행한 2013년 1월 설 특별사면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김효재 전 정무수석과 자신의 사돈인 효성가(家)의 장남 조현준 사장 등 고위층 인사 55명이 사면됐다.
"장관 출신은 안돼"…'특별사면' 외국은?

'특별사면'은 군주제의 유산답게 대통령 등 국가원수의 권한이 강한 나라일수록 잦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우리나라와 미국이 대표적이다. 반면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특별사면이 지극히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미국은 실형 선고 등 유죄 판결이 확정된 뒤 5년이 지나면 사면 청원서를 낼 수 있다. 이들을 특별사면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거의 무제한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은 1974년 "사면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이를 제한하려면 그 조항도 헌법에 담겨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의 사면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69~1974년 재임 중 신청받은 사면 가운데 무려 50.8%를 승인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했다. 닉슨 본인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 자리에 물러난 직후 후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됐다.
그러나 이후 과도한 특별사면에 비판 여론이 일면서 클린턴 행정부를 기점으로 사면 승인율이 떨어지기 시작해 부시 행정부에선 7.6%, 오바마 행정부에선 3.4%까지 낮아졌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한층 강화된 사면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면을 스스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새 지침은 △테러 △국가안보 관련 범죄 △폭력 △어린이 대상 범죄 △총기 범죄 △공공부패 등 6대 사범에 대해서는 사면을 자제토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해서도 사면을 극도로 제한한다는 원칙도 따르고 있다. 3차례 이상 유죄 판결을 받은 자로부터는 사면 신청 자체를 받지 않는 '삼진아웃제'도 운영 중이다.
한편 총리와 권력을 분점함에 따라 대통령 등 국가원수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한 유럽 국가들은 대개 특별사면권 행사에 제한이 많다.
사면이 가장 엄격하게 이뤄지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독일이다. 독일은 수사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이 확인된 경우에만 지극히 제한적으로 사면을 시행한다. 또 사면에 앞서 반드시 유죄를 선고한 판사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판사가 사면에 반대할 경우 사면권 행사에도 제한이 가해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특별사면이 단 4차례만 이뤄졌다. 독일은 사면을 조건으로 일정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길 경우 사면을 철회토록 하는 '조건부 사면' 제도도 운영 중이다.
핀란드 역시 대통령이 특별사면 여부를 결정할 때 우리나라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의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사면권을 견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부정부패 공직자 △선거법 위반 사범 △전쟁범죄 옹호죄 △테러 범죄자 △반인륜 범죄 △15세 미만 미성년자 폭행범 등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사면을 금지하고 있다. 또 덴마크는 행정부 장관을 지낸 인사는 절대로 사면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특별사면' vs '가석방'…뭐가 달라?

'특별사면'과 '가석방'.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큰 차이가 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은 대통령이 지정한 특정인에 대한 형 집행을 면제해주거나 유죄 선고효력을 정지시키는 조치다.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와 법무부 장관의 상신, 대통령의 결정으로 이뤄진다.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이같은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과 사면법을 근거로 한다.
반면 가석방은 대통령이 아닌 법무부 장관의 권한으로 결정된다. 무기형의 경우 20년, 유기형의 경우 형 집행의 3분의 1 이상 지난 모범수가 그 대상이다. 이들은 법무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매달 하순 가석방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교정 성적이나 건강상태, 재범위험성 등이 심사 기준이다. 적격 판단을 받으면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또한 무기형의 경우 가석방 기간은 10년, 유기형의 경우 남은 형기만 채우면 된다.
가석방 대상자는 형을 면제 받는 것이 아니다. 구금상태에서는 풀려나지만 거주지 제한 등 일정한 준수사항이 따르며 통상 보호관찰을 받게 된다. 가석방이 된 상황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가석방 효력은 정지되고 다시 형이 집행될 수 있다.
그러나 특사나 가석방 모두 감옥에서 나와 사실상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가석방의 경우도 조건부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형에서 풀려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에 따라 가석방은 특사로 인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특사와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우회 특사'로 활용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24일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경제인 가석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사실상 최태원 SK 회장 등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마친 재벌 총수에 대한 가석방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기업인도 요건만 갖추면 가석방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가석방 역시 완전히 법무부 장관의 독립적인 판단 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법무부 장관이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전히 대통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다.
법무부의 가석방 심사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다. 경제인 가석방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황 장관은 지난해 7월 형기의 80%를 채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해서는 가석방 불허 결정을 내렸다. 당시 법무부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회 지도층 인사나 고위 공직자에 대해선 가석방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 관계자는 "특사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특사를 막을 수 있더라도 가석방은 여전히 남용될 여지가 있다"며 "가석방이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 특별사면 6가지 유형별 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