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제주 30년만의 눈폭풍…"히말라야에 온줄"

제주=조성훈 기자
2016.01.24 15:06

공항마비 6000여명 발동동...눈보라에 강풍, 정전까지 설상가상

"제주도를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 온 것은 처음봅니다. 한라산에 갔는데 눈폭풍때문에 히말라야에 온줄 알았습니다. 등산이나 관광은 고사하고 이틀째 호텔에만 갇혀있는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객 박모씨)

"제주도에서 나서 자랐는데 이런 눈보라는 처음봅니다. 한라산이면 몰라도 해안지대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온건 30년만에 처음입니다"(제주주민 김모씨)

30년만의 대폭설로 관광1번지 제주가 그야말로 올스톱됐다. 하늘길과 뱃길이 막히면서 관광객 수만명은 공항과 호텔에 발이 묶였다. 도로는 꽁꽁 얼어붙었고 길거리는 눈폭풍 때문에 히말라야 설원지대를 방불케했다. 지난 22일 1박2일 일정으로 워크숍 참석차 제주를 찾은 기자도 옴싹달싹 못하는 신세가됐다.

23일 오전부터 굵어지기 시작한 눈발은 어느새 제주 전역을 덮쳤다. 이날 점심식사뒤 기자가 속한 팀의 한라산 등반계획은 눈폭풍이 몰아쳐 취소됐다. 한라산 이동중 버스가 체인을 감는 사이 잠시 버스밖으로 나갔지만 휘몰아치는 눈바람에 5분도 못버티고 버스로 돌아와야했다.

눈보라와 강풍에 눈을 뜨거나 몸조차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파른 눈길에서는 교통사고가 속출했다. 몇몇 차량은 미끄러진채 180도 돌아가 있었다. 한라산 등반을 포기한 등산객들중 일부는 대중교통이 마비되자 한라산 관통도로를 걸어서 내려와야했다. 갑작스런 폭설에 입산통제가 늦어진 결과였다.

제주공항은 이미 마비상태였다. 오전부터 항공편 결항과 지연이 속출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공항에서 대기하던 이들은 오후들어 전 항공편 취소와 활주로 폐쇄소식이 전해지자 분통을 떠뜨렸다. 제주공항내 대기하던 관광객 6000여명은 공항근처 호텔 등 숙소를 찾으려했으나 택시 등 이동편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굴렀다. 호텔과 여관 등에 예약 문의전화가 폭주했으나 방도 잡기 어려웠다. 1000여명은 노숙을 택했으나 잘자리가 마땅치않아 포장용 박스를 깔고 밤을 지샜다.

눈에 파묻힌 제주. 24일 오후 제주시 노형동일대에서 한 관광버스 기사가 체인을 감아걸고있다./사진=조성훈기자

관광객 김모씨는 "수화물센터에서 1만원을 주고 박스를 사서 펼치고 잤는데, 이불도 없고 도대체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며 “식당에 사람이 많아서 이용도 못하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말했다.

개인일정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일찍 이날 오전 공항으로 출발한 기자의 동료 임모씨는 비행기안 에서 5시간동안 오도가도 못하고 기다려야했다. 임씨는 "처음 30분 기다릴때만해도 조금 있으면 출발하려니 생각했는데 기장이 계속 정비중, 활주로 제설중이니 기다리라만 반복했다"면서 "점심도 못먹고 기다렸는데 5시간만에야 항공편이 취소됐다면서 내리게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항공사는 돌아서는 그에게 식권 한 장을 나눠줬다.

호텔로 돌아올 길도 막막했다. 동료가 어렵게 택시를 구해 공항에서 대기하던 임씨를 태우고 돌아왔다. 평소 10분거리인 공항까지 1시간이 넘게걸렸다.

결항소식에 애시당초 공항행을 포기한 이들도 숙소에 감금되다시피했다. 길이 얼어붙어 차편을 구하기 어려웠던데다 돌풍이 몰아쳐 식당찾기도 어려웠다. 겨우 숙소인근 흑돼지 구이집을 찾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마저도 곧 포기해야했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환풍기가 멈춰서 한 순간에 식당안이 연기로 가득찬 것이다. 한전 송전설비가 강풍에 훼손돼 제주시 일대 정전이 발생했다. 손님 50여명이 자리를 뜨면서 식당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됐다. 식당주인 김모씨는 "수십년 장사했지만 이런 날은 처음"이라면서 난감해했다.

근처 편의점도 POS(판매시스템)이 마비돼 영업이 중단됐다. 호텔로 돌아왔지만 정전으로 비상발전기를 가동함에 따라 TV는 물론 난방도 중단됐다. 다행히 몇시간만에 정전이 끝났지만 간헐적으로 단전이 지속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

제주시 노형동 거주하는 김옥주(여, 55세)씨는 "제주에서 오래살았지만 이렇게 해안지역까지 눈폭풍이 이렇게 몇일동안 이어진 것은 처음인 것같다"면서 "개인택시를 하는 남편은 몇 푼 더 벌려다가 사고나면 손해라면서 쉬기로 했다"고 말했다.

24일 기상이 호전되길 바랬지만 눈폭풍은 더 거세지는 상황이다. 공항공사는 25일 오전 9시까지 제주공항 활주로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25일 항공편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기자는 결국 월요일 점심과 저녁약속을 취소해야했다. 1박 2일 워크숍이 최소 3박 4일 여행이 된 것이다. 그나마 기자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워크숍을 마친뒤 25일 가족들과 해외여행에 나서려했던 동료 박모씨는 결국 아내와 아이들만 먼저 여행지로 보내고 수요일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박씨는 "제주도에 자주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악몽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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