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기능보유자는 올해 83세다. 1971년에 처용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등재될 때 보유자가 됐으니, 올해로 인간문화재가 된 지 35년째다. 당시 김 보유자와 함께 처용무 1세대가 됐던 나머지 보유자 4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김 보유자는 1950년 6.25 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오른쪽 얼굴에 부상을 입어 제대했다. 그때 나이가 25세였다. 민간에 나와 할 일이 없었던 그는 경주에서 천자문과 주역, 그리고 우리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우연히 서울에 국립국악원이 생기면서 우리 음악을 한 사람들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악원 공무원이 되어 우리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다 보니 남자가 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춤 가운데 하나인 처용무가 눈에 들어왔다.
"처용무가 그냥 도제식으로 춤사위만 배우다 보니 하나도 재미가 없는 거라. 그래서 이게 뭔 춤인고, 하면서 연구를 시작했지. 내가 천자문과 주역을 공부했으니까 기존 기록들을 뒤지기 시작했고."
오래된 기록들을 펼치니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악학궤범' 속에는 무용수들이 줄을 서는 대형과 탈을 만드는 방법, 옷의 재질과 치수까지 처용무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시용보태평지무'에는 처용무가 어떤 동작으로 이뤄졌는지가 나왔다.
연구를 더 하다 보니 통일신라 시대의 설화와 향가, 춤을 왜 고려와 조선 왕실이 채택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깨닫게 됐다. 단지 춤 자체가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처용이 아내를 살린 그 힘을 빌려 백성들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담겨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랑 똑같은 거야. 유행병이 돌던 시기, 왕들이 매우 문화적인 해법을 내놓은 것이지. 죽어가는 마누라를 살렸던 마음이 우주 만인을 살리는 천지의 본심이 아니겠느냐. 이런 해석을 한 거야."
처용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우주를 구성한다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춤으로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관점이 담겨있었고, 수양의 의미로 추는 춤이었다.
"지금은 처용무가 전시품으로서만 보관될 것이냐, 아니면 이 시대에 맞게 수용돼 계승 발전될 것이냐가 달린 시점이지. 사람들이 외국 것만 찾지 말고, 오래도록 지켜온 우리의 동양적인 우주관을 관심 있게 봤으면 좋겠어." 김 보유자는 마지막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