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문장으로 읽고 인생을 채우다

머니투데이 북팀(김고금평, 김유진, 박다해, 김지훈 기자) 기자
2016.04.02 03:02

[따끈따끈 새책] '외롭지 않은 말', '나를 지키는 말 88', '여자의 문장', '남자에게 필요한 말'

말은 유희로, 교감으로, 철학으로 매일 옷을 갈아입는다. 수없이 뒹구는 말의 회전율 속에서 우리는 삶에 적응하고 삶을 변화시킨다. 삶에서 재미있는 문장, 그리고 좋은 문장과 만났을 때 느끼는 기쁨만큼 더한 즐거움을 찾기도 쉽지 않다. 여기 일상에서 쉽게 던지는 관용어, 남녀에게 필요한 문장, 자신의 인생을 다잡는 언어 등 문장이 주는 기쁨의 언어들을 모았다. 읽을수록 재미있고, 이해할수록 깊이 남는 언어와 문장들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심의 관계를 해소하는 유일한 해답은 ‘교회 오빠’다.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 친구와 같이 있는 장면을 들키면 십중팔구 “그냥 아는 교회 오빠예요”가 정답. 여기서 ‘그냥’과 ‘아는’, ‘교회’는 모두 같은 뜻이다. 세 번 같은 말을 반복했으니, ‘이보다 더 진실할 수 없다’는 확신이 서려 있을 수밖에 없다.

21세기 ‘처용가’가 ‘처형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이렇게 내용을 바꿔도 될 법하다.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노니 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아는 교회 오빠구나/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아, 그냥 교회 오빠거라니까!’

‘외롭지 않은 말’의 저자인 권혁웅 시인은 기발하고 영민하다. 주변에서 흔히 내뱉는 ‘일상어’를 흘려 듣지 않고 겉뜻과 속뜻을 낱낱이 분석해 유머와 철학, 의미를 골고루 투영한다. 일상어가 ‘존재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교회 오빠’ 편은 그렇게 유머로 그치지 않는다. 이 단어의 출현은 교회의 독특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의 이야기까지 끄집어낸다. 육신의 죄에 대한 가르침이 주는 순결 콤플렉스는 결국 ‘교회 오빠’라는 면죄부 성 발언을 통해 ‘나는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는 뜻을 전달하는 셈이다.

목욕탕 수건에 적힌 문구 ‘가져가지 마시오’의 겉뜻은 절도를 경고하지만, 속뜻은 사랑을 설명한다. ‘OO목욕탕’에서 ‘가져가지 마시오’를 거쳐 ‘훔친 수건’에 이르기까지 문구의 진화사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의 소유권에서 손님의 입장(마음을 ‘훔친’)을 대변하는 과정이 사랑을 암시한다는 얘기다.

수건 문구 하나에서 읽는 표면과 이면의 해석 확장성은 77개 일상어에 모두 녹아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느냐’에서 겉뜻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느냐’의 신버전으로, 속뜻은 ‘아이폰 배터리 갈아 끼우는 소리 하네’의 구버전으로 해석된다.

뚱뚱해졌다고 걱정하는 ‘나 요즘 살쪘지?’의 속뜻은 사랑이 식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응답자라면 이런 식의 논리를 근사하게 대야 할지 모른다. “우리 몸은 똥배를 좋아하게 최적화됐어. 음식을 지방으로 바꿔 몸에 잘 저장한 인간만이 빙하기를 이기고 살아났거든.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잖아. 당신은 진화의 정점이야.”

‘늙으면 죽어야지’를 노인들의 한탄으로만 읽었던 이들이라면 그것이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뜻이 숨겨있다는 사실을 새로 간파할 수 있다.

남녀 관계가 무르익어 빈방(?)에 들어간 자리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말 ‘난 자기가 처음이야’. 어디까지 해석해야 할까. 유일무이성에 기댄 고백일까, 당신이 몇 번째인지 셀 수 없다는 자백일까. 저자는 명쾌하게 이렇게 결론짓는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내 앞에 선 당신이 세 번째든 열일곱 번째든 대답은 한결같이 ‘당신이 내겐 처음이야’”라고.

이 책은 일상어, 즉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관용어를 새롭게 읽는 일상어 사전이다. 누구에겐 유치하고, 또 어떤 이에겐 식상 할 수 있는 이 일상어는 혼자만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교감과 공감의 메시지다. ‘여보세요?’라고 묻고 ‘여보세요’라고 답하는 ‘덤앤더머’식 대화의 반복성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구원하며 외로움을 탈피하는 해결의 열쇠이기도 하다.

정현종 시인의 ‘섬’을 읽을 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는 섬의 문학적 의미는 개별과 고독의 주체, 불완전한 자아의 고립 같은 어려운 철학적 명제로 수렴될지 모른다. 하지만 일상어 영역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더 밝은 웃음으로 이 ‘문학’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썸이 있다/그 썸을 타고 싶다’.

저자는 “일상어는 문학의 관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죽은 말’로 여기지만, 그것이야말로 삶의 현재형이자 표현형으로 문학과 동떨어질 수 없는 언어”라며 “같이 쓰는 일상어에선 더는 혼자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외롭지 않은 말=권혁웅 지음. 마음산책 펴냄. 268쪽/1만3000원.

“가슴에 닿는 햇빛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라.”

미국에 온 백인들에게 인디언 야키마족 추장이 한 말이다. 침묵과 명상 속에 자신을 둘 줄 알았던 인디언들은 여행기 등 각종 기록을 통해 먼 타지에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말의 조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남겼다.

“우리는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자 노력했으며, 자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한적한 평원을 거닐며 마음을 침묵과 빛으로 채우지 않으면 우리는 갈증 난 코요테와 같은 심정이었다.” (오타와족 인디언 ‘검은 새’)

“당신들은 계절의 바뀜도 하늘의 달라짐도 응시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늘 생각에 이끌려 다니고, 남는 시간은 더 많은 재미를 찾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기를 돌아보는 침묵의 시간이 없다면 어찌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는가.” (쇼니족 인디언 ‘푸른 윗도리’)

‘말’이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기술’이 아닌 ‘영혼’이 필요하다는 게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말’ ‘오래 기억되는 말’ 등 주제별 목차만 보면 마치 말을 효과적으로 하는 ‘팁(Tip)’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말을 잘하는 방법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각 주제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사람’ ‘오래 기억되는 사람’으로 대치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도록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는 말 88= 손화신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320쪽/ 1만5000원.

인문학자 한귀은(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자신이 밑줄을 그었던 문장을 실제 삶 속으로 가지고 온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순간 자신이 느꼈던 감정, 직접 겪는 경험에 문장을 더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통해 사유와 성찰의 범위를 넓힌다. 한 교수는 “텍스트의 문장이 진실이 되는 때는 그것을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밑줄을 그은 문장은 방대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카를 구스타프 융 등 고전부터 피에르 부르디외나 버트런드 러셀 등 인문학자의 저서, 무라카미 류나 박경리의 소설 곳곳에 펼쳐져 있다. 영화 ‘인턴’, ‘리스본행 야간열차’, ‘경주’ 등의 대사나 백석의 시, 심지어 ‘행복의 나라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 가사도 있다.

무엇보다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 시몬 드 보부아르 등 선구적인 삶을 살아간 여성 작가들의 문장을 통해 여자의 인생을 이야기한 점이 돋보인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수전 손택의 말’ 29쪽)

한 교수는 문장과 삶이 만나 변화를 이끌어내고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자의 문장=한귀은 지음. 홍익출판사 펴냄. 272쪽/1만3800원

1941년 생 노익장 앨런 C. 폭스는 네 번 결혼했다. 자녀 여섯에 의붓자식 둘과 수양아들 하나를 둔 아버지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전미 규모의 회계법인 세무 전문가이면서 미국 11개 주에서 70개 이상의 대형 임대 수익형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의 실패와 성공의 교훈을 토대로 54개 ‘피플 툴’을 만들었다. 피플 툴이란 인생관을 바꾸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행동 기법으로 한 문장에 응축했다.

‘보이는 규칙과 보이지 않는 규칙 모두를 익혀라.’ 사회 또는 조직의 불문율에 대한 이해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시큐리티퍼시픽뱅크를 인수했을 때 두 기업 간 문화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시큐리티퍼시픽 직원 상당수는 직장을 잃었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총괄 인적자원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이도 있다. 그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많은 직원과 함께 하면서 그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불문율’이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돈을 많이 모아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말도 흔히 하지만 다 맞지는 않다. 죽기 직전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게 맞다’ 또는 ‘그런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라는 관념에 파묻히다가 진짜 원하는 것을 놓치지 말라는 충고다.

◇남자에게 필요한 말=앨런 C. 폭스 지음. 조성숙 옮김. 아우름 펴냄. 300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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