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란 말 속에 도사린 위험성

김지훈 기자
2016.04.09 03:10

[따끈따끈 새책] '트라우마의 제국'…피해자를 '선택'하고 선과 악을 나눠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9.11 테러’ 사건 한 달 후 맨해튼 남부 거주인 1000명 가운데 설문에 응한 사람 7.5%는 외상 후 스트레스(PTSD)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9.7%는 우울 증상이 있거나 정신건강 의료서비스를 찾았다. 빌딩 붕괴 장면을 장시간 TV로 시청한 사람도 PTSD를 겪었음을 시사하는 지표도 공개됐다.

이 사이 심리요법 전문 웹사이트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건 3년 후에는 ‘9월 11일’과 ‘트라우마’로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150여만 개의 검색 결과가 도출됐다.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의사인 디디에 파셍, 리샤르 레스만은 신간 ‘트라우마의 제국’을 통해 이 같은 트라우마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너무 많은 대상을 트라우마 하나로 광범위하게 묶는 시선에 의문을 제기한다. 역설적이게도 쓰나미나 지진 등 자연재해 피해자는 물론, 성폭행 피해자, 전쟁 피해자까지 정신적 고통을 그저 하나의 ‘진단명’으로 통하게 한다. 저자들은 피해자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자로서 ‘직무유기’에 가까운 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트라우마가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짚는다. 트라우마가 단순한 진단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누가 피해자인지를 ‘선택’할 뿐 아니라 선과 악을 분류하는 기준에 쓰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불순한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악용될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 정치계가 트라우마에 빠르게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무장관은 안보기구를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권위를 강화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트라우마의 제국=디디에 파생, 리샤르 레스만 지음. 최보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464쪽/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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