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5만명 찾는 폐광 입구엔 '아빠! 오늘도 무사히' 푯말이…

정선(강원)=김지훈 기자
2016.05.02 07:05

[르포-도시재생이 필요한 이곳] <下>'광부의 혼' 깃든 곳 관광자원화 가속

심호용 사북석탄유물보존관리위원회 현장 소장. /사진=김지훈 기자

'아빠! 오늘도 무사히.'

지하수에 엉킨 석탄 더미인 죽탄이 갱도를 메우면 생존이 가능한 공간은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강원도 정선의 광부들은 언제 죽탄이 쏟아져 내릴지 갱도가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주요 탄광에서 50여년 간 생업을 일궜다. 갱도 입구에는 가족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글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광부로 일하던 시절엔 갱도 앞글을 무시하고 빠르게 지나다녔어요. 심지를 굳게 하고 일해야 내 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그 글자들을 보면 괜시리 마음이 약해지고 얼굴이 생각나잖아요." 20여년 간 정선의 광부로 살았던 심호용 사북석탄유물보존위원회 현장 소장의 말이다.

사북광업소의 옛 광부들이 주축이 된 사북석탄유물보존위원회는 동원탄좌 부지 소유자가 된 강원랜드와 손잡고 이 곳을 석탄역사 체험터로 꾸몄다. 광부들의 애환이 묻어난 현장은 이제 ‘사북석탄유물보존관’으로 운영된다.

탄을 나르는 광차와 사람을 나르는 인차가 동원탄좌에 아직 남아있다. 탈의실, 세면장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숱한 채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던 왕년의 광산 사내들이 시설을 안내한다.

심 소장은 20대 시절인 1980년대부터 2004년 아시아 최대 민영석탄회사인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폐광까지 여러 갱도에서 일했다. 1962년 운영을 시작한 동원탄좌를 마지막으로 정선의 탄광은 모두 문을 닫았다.

옛 삼척탄좌 갱 입구. /사진=김지훈 기자

"수직으로 지하 350m 아래까지 내려가면 첫 '정거장'을 만나요. 그리고 50m 더 내려갈 때마다 다른 정거장이 나옵니다. 동료들은 승강기가 멈출 때마다 자기 작업장으로 이동해요. 계속 내려가면 사갱(경사 갱도)도 나오지요. 그렇게 서로 다른 곳으로 내려간 친구들이 무사한지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 알 수 있었습니다." 심 소장은 지하 1000m까지 들어가는 동원탄좌 수직갱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사북 '국민학교', 사북 중학교, 사북 고등학교 출신이예요. 이 곳 친구들은 학창 시절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장'이라고 했어요. '항', 즉, '굴' 속의 대장 정도가 그 시절 사내들이 아는 모든 삶이었지요."

우리나라 석탄 산업은 1906년 광업법이 제정된 후 시작됐다. 일제 시대 전남 하순 구암광탄을 시작으로 잇따라 탄광이 개발됐다. 국내에서 탄광이 가장 많던 시점인 1984년 전국에 361개 탄광이 있었다. 지금은 태백 등지의 5개 탄광만 명맥을 잇고 있다.

옛 동원탄좌 수갱의 인차. /사진=김지훈 기자

1970년대 14만명 수준이던 정선군 인구수는 지난해 말 기준 4만명 미만이다. 그러나 그 보다 많은 인원이 이 잊힌 시설을 찾았다.

"연간 5만명 정도가 동원탄좌를 찾아요. 인근 탄광촌은 개발로 사라졌지만 광업소 시설 등 광부들의 '혼'이 실린 석탄유물들을 이제라도 제대로 보존했으면 좋겠어요." 석탄유물보존위원회는 강원랜드 등과 협력해 일대를 탄광문화 관광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푯말은 정선 고한읍 삼척탄좌 수평갱 입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964년 시작해 2001년 폐광한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는 2013년 국내 1호 예술광산을 표방한 '삼탄아트마인'으로 탈바꿈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예술품 수집에 힘쓴 고(故) 김민석 설립자의 유지를 이어 그 아내였던' 손화순 대표가 삼탄아트마인 시설을 이끌고 있다. 광업소 시설 보존과 함께 일대를 미술 전시장으로 운영한다.

운탄고원 /사진=김지훈 기자

"갱을 둘러 보고 이처럼 멋진 곳이 우리나라에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시에서 사업도 오랜 세월을 하고 찾아온 이 일대의 폐허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삼탄아트마인을 통해 오지에도 문화시설이 싹틀 수 있음을 보이고 싶다는 손 대표의 말이다. '흔적과 소생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손 대표의 삼탄아트마인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도 각광받았다.

"올해 '오리진 아트'(원시미술) 콜렉션을 선보이는 전시공간을 이곳에서 정식 개장할 계획입니다. 내실을 쌓고 외연도 넓히면서 예술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정선의 '하늘길'로 불리는 '운탄고도'는 과거 탄을 운반하던 길이었다. 해발 1km 인근까지 버스가 드나들던 이 지역에는 과거 동원탄좌의 사택이 있던 탄광 지역도 있다. 초입 근방엔 검은 폐석 더미들이 산을 이룬다.

운탄고도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한 강원랜드는 탄광문화를 기념하는 조형물인 '광부상'을 설치하는 등 탄광 문화 조명에 집중한다. 앞서 운탄고도 위 해발고도 이름과 같은 '1177갱'의 갱도 초입을 일부 복원해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다. 갱목에는 광부들이 고사를 지내기 위해 매달아 놓는 '굴비'도 있다.

강원랜드는 과거 갱목 설치에 동원됐던 식목은 물론 지반이 침화된 연못 생태계도 함께 복원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탄광 문화의 보존과 함께 탄광의 운영으로 훼손된 자연 생태계를 되살리는 작업도 나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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