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팔려야 했다.
문화가 잘 팔리는 상품으로만 보이는 때가 있었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초판을 넘어서거나, 몇만부만 팔려도’ 히트작이라는 지금은 외계어처럼 돼 있는 베스트셀러. 그런 책이 나올땐 팔린 책을 쌓아올리면 63빌딩 높이의 몇배다, 또는 책 쓰느라 들어간 원고지매수가 어느 산 높이다 등등. 감동의 심연은 모두 숫자로 치환됐다.
대박영화가 탄생할 때마다 그 작품이 갖는 경제적 가치나 파급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동차(현대차 쏘나타) 몇십만대 수출이 꼭 따라다녔다. 지난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흥행수입 9억1000만달러)이 개봉됐을 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영화 1편의 흥행수입이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영상(당시로는 드물었던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형이라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전국관객 600여만명, 흥행수입 360억원)가 개봉된 99년에는 경제효과 1107억원에 쏘나타 3000여대를 생산한 것과 맞먹는다는 한국은행의 발표도 있었다.
같은해(2004년)에 개봉돼 나란히 1000만 이상 관객이 들며 쌍천만 영화라는 말을 들었던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때도 그랬다. 두 영화 흥행성과는 중형 승용차인 ‘EF쏘나타’ 2만2200대 생산과 같은 정도이고 연인원 4670명의 취업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괴물’, ‘명량’, ‘부산행’ 등도 어느 정도 비슷했다. 관객 한명은, 책 한권은 꼭 1만 ~ 2만원짜리여야 할까.
# 꼭 쓰여져야 한다고(쓰여지지 않았느냐고) 했다.
이하(아래 언급된 것)은 감독이나 작가, 화가, 제작사, 출연 배우 등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그렇게 재단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CJ엔터테인먼트와 NEW 등 몇몇 영화사는 최근 몇 년 사이 롤러코스터식 평가와 시선에 시달렸다.
영화 ‘변호인’의 배우와 제작사(NEW)는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를 히트시켰다는 이유로 불온하다는 뒷소문에 시달렸다. CJ는 ‘왕이 된 남자, 광해’ 등을 배급하고서 사대라는 명분보다 애민을 앞세운 대리군주의 의미가 뭔지를 캐묻는 듯한 시선을 피해가지 못 했다.
그뒤로 CJ는 지난해 ‘인천상륙작전’을, NEW는 2015년 ‘연평해전’을 스크린에 올리고서야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CJ는 부녀 대통령의 눈물과 추억이 담긴 천만 영화 ‘국제시장’으로도 소용이 없었다.
야당(또는 후보)과의 관계를 의심받았던 작가인 안도현 시인, 이윤택 극작가 등은 블랙리스트 시비에 시달렸다. 작가가 있더라도 ‘작품은 작품일 뿐’이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겐 작품들이 프로파간다(선전)의 거울로만 비춰졌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던 안도현 시인은 3년간 절필하다 지난해 연말부터 다시 시를 쓰겠다고 했다.
# 새해도 열흘이 지났다.
한없이 맑은 영혼을 가졌는데도 28세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윤동주 시인은 ‘자화상’에서 이렇게 썼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후략)’ 미움과 가여움의 감정은 자신의 것일뿐 늘 한결같은 것들이 무척 많다.
‘죽는 날까지/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부끄러움을 갖지 않아도 될 시인의 참회는 소슬한 바람과 함께 읽는 이의 정수리를 서늘하게 한다. 2017년은 누구나 사랑하는 윤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