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생물학의 두 거장, 자연을 향한 인간의 길을 찾다

오진영 기자
2025.04.0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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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은행나무 제공

영화 '남한산성' '레버넌트' 등의 OST를 담당해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세계적 거장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담을 다룬 책이 나왔다. 2023년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가 생전 일본의 저명한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와 '음악과 생명'에 대해 나눈 진솔한 대화가 가감없이 담겼다. 20년간 영감을 주고받은 두 거장의 생각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후쿠오카 신이치와 책에서 되풀이하는 주제는 '로고스'와 '피시스'다. 로고스는 인간의 사고 방식과 논리를 뜻하며 피시스는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한다. 두 사람은 음악과 생물학을 통해 로고스의 정상에 올랐지만 인간이 갖는 인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고 뜻을 모은다. 아무리 로고스를 훌륭히 활용하더라도 결국은 피시스를 왜곡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들은 음악과 생물학의 한계를 뛰어넘고 자연의 소리와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향해 질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모든 것이 언젠가는 열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고 끝맺게 된다는 열역학 2법칙(엔트로피)을 알더라도 끊임없이 파괴와 창조를 되풀이해야만 더 높은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파괴에서 탄생한다'는 음악과 생물학의 특징도 이같은 '아름다운 덧없음'을 닮아 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도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 자연의 소리와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탐구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돼 있다. 피아노로 대표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은 서양음악의 특징을 앞세워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오히려 이를 벗어나야만 자연의 풍부한 소리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 후쿠오카 신이치의 '실험실에 갇힌 생물학으로는 생명의 역동성을 포착할 수 없다'는 말도 같은 의미가 담겼다.

이 책에서 두 거장이 하고 싶었던 말은 자연에 대한 예찬이다. 음악과 생물학은 서로 다른 분야지만 자연을 전달한다는 의미에서는 그 뿌리가 같다. 두 사람은 대담 내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해상도 높은 언어'에 대한 추구를 이어간다. 아름답고 완벽한 '유일한 정답' 대신 새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거장의 깊은 고찰과 생각이 담겨 있어 관련 지식이 없다면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다. 대화가 음악과 예술에 대한 것에 집중돼 있다가도 어느 순간 건너뛰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칫 흥미를 잃을 우려가 있다.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허무주의적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은 인간 예찬론자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골든글로브 음악상과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세계적인 음악가로,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재즈와 탱고, 일렉트로닉 뮤직과 힙합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음악 세계와 파격적인 시도로 주목받았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생물학 저서를 펴내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분자생물학자다.

◇음악과 생명, 은행나무,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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