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오진영 기자
2025.08.23 09:00

[이주의 MT문고]-'이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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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난다 제공

예술가가 직접 자신의 삶에 대해 쓴 책이 나왔다. '이피세'는 현대미술가 '이피'가 자신의 내면과 작품, 예술세계에 대한 단상을 한 데 묶은 이야기다. 에세이와 편지, 가족들에게 쓴 글, 굵직한 사회적 사건의 감상까지 예술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풀어 썼다. 예술가 특유의 독특한 필체로 서술한 전개 방식이 흥미롭다.

인상적인 부분은 자신의 작품에게 보내는 편지다. '내장여자'라는 이피의 작품은 기괴하다. 산발한 머리카락 위로 선홍색의 내장이 배치돼 있다. 내장의 형태는 바퀴벌레의 다리 같기도, 살갗이 벗겨진 여성 같기도 하다. 저자는 공포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너'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지금은 창고 속에 갇힌 너. 어떻게 지내는지. 다시 만나면 철제 의자에 앉히고 담배를 물려줄게.

책은 이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에게 말을 던진다. 먹과 색연필로 그린 그림과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가시덤불, 다리 여덟 개를 가진 분홍색 여성.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단순한 미술품이 아닌 인격을 가진 상대로 대한다는 방증이다. 잘못 제작되거나 예상과 다르게 바뀌어 버린 작품과 헤어질 때 건네는 말은 마치 연인과의 이별을 연상시킨다.

수많은 작품의 사진으로 점철돼 있어 마치 도록(전시회 그림을 실어 놓은 목록) 같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부터 다다이즘(파괴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 기존의 미적 관점을 뛰어넘은 작품 등 수많은 작품들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어떤 생각을 하고 만든 작품인지, 또 무슨 반응을 기대하고 만들었는지 뒷이야기도 담겼다.

책 곳곳에서 흠집도 눈에 띈다.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불쾌감을 느낄 만한 대목이 여러 군데다. 전통 질서에 대한 반발과 거부감은 예술가의 천성이라지만 지나치면 '우매한 대중을 계몽하겠다'는 지적 우월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 글을 영어와 한국어 2가지로 나눠 쓴 것도 선뜻 납득이 어렵다. 억압받는 계층을 보호하는 듯하면서도 일견 상대를 악마화하는 극단주의의 냄새도 난다.

저자는 회화와 조각, 설치 등 여러 장르에서 고려시대 불화 기법과 동시대 재료를 결합하는 독특한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예술가다. 미국 현대예술재단(FCA)이 매년 1명 선정하는 '도로시아 태닝 상'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됐다.

◇이피세, 난다,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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