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로 읽는 시대감각]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야기를 만드는가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2026.07.26 06:00

[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소개하는 전문가 칼럼 코너
01_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상설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는 '알파에서 히읗까지'(안상수) 작품. 문자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래에 만들어질 문자는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간은 왜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연결되려 하는가.'

이 연재는 이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왜 의미를 소비하는가. 왜 취향으로 자신을 드러내는가. 왜 질문을 남기는 콘텐츠에 오래 머무는가. 그리고 왜 기록되지 못한 것들의 소멸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가. 열 편에 걸쳐 다른 얼굴로 물어온 이 질문들은, 사실 하나의 답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시대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진 시대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분석하고, AI는 정보를 요약하며, 화면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한다. 사람들은 더 빠르게 소비하고, 더 짧게 반응하며,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더 강하게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첫 칼럼에서 말했듯, 오늘날 사람들은 물건이나 정보가 아니라 '의미'를 소비한다. 기능보다 세계관을 선택하고, 설명보다 태도를 산다. 취향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언어가 되었다. 동시에 콘텐츠는 점점 더 인간의 결핍을 자극하는 쪽으로 재편된다. 사람들은 더 많이 접하지만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교하며 불안해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은 의미를 필요로 하는가. 어쩌면 결핍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건보다 경험을, 경험보다 이야기를, 이야기보다 정체성을 원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서로를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상대에게 닿지 못하고, 이해한다 말하면서도 결국 자기 이야기만 반복한다. 그 빈자리를 소비가 파고들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약속하는 삶이고, 그 약속은 대개 현실에 없다. 그래서 결핍은 잠시 가려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연결과 의미인지도 모른다.

홍보도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무엇이든 화제가 될 수 있는 시대지만, '잘되는 콘텐츠'와 '오래 남는 콘텐츠'는 점점 다른 영역이 되어 간다. 빠르고 자극적인 메시지는 쉽게 퍼지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 안에 질문으로 남는 콘텐츠는 드물다. 그래서 좋은 전시는 설명을 끝내지 않고 질문을 남긴다. 관람객은 전시장을 나선 뒤에야 비로소 그 전시를 자기 삶 안에서 다시 해석하기 시작한다.

바로 여기에 이 연재가 도착한 자리가 있다.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의미에 굶주리는 시대에, 정작 의미의 원천인 기록은 사라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언어와 문자가 있고, 기록되지 못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밀려난다. 정보는 넘치는데 의미는 부족하고, 의미를 갈구하면서도 그 뿌리는 지워지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의 역설이다. 그러니 기록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다. 무엇을 미래에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역설이 왜 인간만의 문제인지는, 유발 하라리의 오래된 통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인간이 다른 종보다 압도적인 협력을 이룬 이유를 '이야기를 공유하는 능력'에서 찾았다. 국가와 돈, 제도와 문화처럼 당연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 사람들이 함께 믿어온 이야기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도구를 쓰는 존재이기 이전에, 같은 이야기를 믿고 연결되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이 능력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위협받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마지막 영역으로 남는다고 본다. AI는 정보를 처리하고 요약하고 추천한다. 그러나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어떤 질문을 남길 것인가는 대신 정해주지 못한다. 정보는 위임할 수 있어도 의미는 위임할 수 없다. 이 연재가 열 편에 걸쳐 도달한 답이 이것이다. 사람들이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이유도, 사라지는 기록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미는 누가 대신 만들어줄 수 없기에, 인간은 끝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박물관이 서야 할 자리도 여기다. 과거의 박물관은 유물을 수집하고 설명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요구되는 것은 다른 역할이다. 관람객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고 질문을 이어가는 공간, 인간의 기억과 경험이 서로 만나는 자리다. 사라진 문자와 오래된 기록, 누군가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곳. 박물관은 과거를 진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이야기로 서로를 이해해 왔는지를 연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열 편에 걸쳐 전시를 어떻게 전할지 고민해 온 나에게, 그 일은 언제나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전할지 묻는 일이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문명을 만들었다. 앞으로 AI는 더 많은 정보를 대신 처리하겠지만, 정보가 곧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미는 누군가 그것을 기억하기로 마음먹을 때, 그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때 비로소 생겨난다. 그것은 대신 시킬 수 없는 일, 끝까지 사람의 손에 남는 일이다. 미래의 박물관 역시 그 손이 서로 닿는 자리여야 한다.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 부장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