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대그룹 등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제재에 나선다. 최근 1년간 조사를 마치고 심의·의결 절차를 진행중인데, 빠르면 다음달 전원회의를 열고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전원회의에서 혐의가 확정돼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등이 이뤄지면, 2014년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방지법이 만들어진 이후 사상 첫 제재 사례로 기록된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현대그룹측에 현정은 회장 등 총수 일가의 부당이득 편취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엔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현대로지스틱스가 2013~2014년 현대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부당하게 내부거래를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 88.8%를 올해 초 롯데그룹에 매각, 현재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현대증권도 같은 기간 일감몰아주기 당사자로 지목됐다. 현대증권 현정은 회장 일가가 지분 72.72%를 소유한 비상장 IT업체인 현대유엔아이에 거액을 주고 주전산기 교체사업을 맡기는 등 전산기 용역을 몰아줬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5월 현대그룹 내 불공정거래 정황을 포착, 서울 종로구 현대로지스틱스 사무실과 여의도 현대증권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공정위는 최근 조사를 마치고 그동안 혐의를 대부분 확인해 심사보고서에 담았다.
현대그룹이 로펌(법무법인)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확인하고 공정위에 소명(최소 2주일내)하면, 공정위는 전원회의 일정을 잡고 이에 대한 결론을 낸다. 통상 심사보고서 발송 후 1~2개월 후 전원회의가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다음 달 중에 대기업 총수에 대한 첫 일감몰아주기 제재가 이뤄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영역이 대기업 총수 일감몰아주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원회의에서 무혐의 판정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기업들이 법 시행 1년 유예기간에 거래 관행을 많이 개선해 과징금 등 제재 수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비상장사는 20%)하는 계열사는 2014년 2월에 개정된 공정거래법(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부당 내부거래로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매출이나 이익을 끌어올린 뒤 상장시켜 막대한 부를 취득하거나 승계자금을 편법으로 마련해온 행태를 없애는 게 이 법의 취지다.
이 법에 적발될 경우 총수 일가에게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수혜를 받은 기업은 3년 평균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으로 부과받는다. 당시 국회는 법 시행을 늦춰 2015년 2월까지 1년 유예기간을 줬다. 현대그룹 측은 1년 유예기간에 문제가 됐던 부문을 많이 해소했기 때문에 전원회의에서 적극 소명한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해서 잘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가 안팎에선 이번 현대그룹을 시작으로 한진그룹과 하이트진로, 한화그룹 CJ그룹 등 다른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조사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그룹은 문제가 됐던 싸이버스카이(조양호 회장의 장녀 조현아씨 등 세 자녀가 100% 지분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를 대한항공이 인수해 일감몰아주기 해소 논란을 해결했다는 입장이지만, 공정위는 2014년 이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지 고심중이다.
또 하이트진로는 비상장 계열사인 서영이앤티의 매출액이 하이트진로와의 비정상적인 내부거래를 통해 창출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고, 한화그룹도 한화증권과 한화S&C간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 사익편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현재 조사대상 기업들에 대해 순차적으로 법리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