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잠재 위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DB)에 한계가 있다”
지난 7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결정 회의에서 한 금통위원이 지적한 내용이다.
올해 6월말 기준 국내 가계부채 총액은 1257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1년 만에 125조7000억원(11.1%) 증가했다.
그렇지만 정작 가계부채 관련 통계는 미흡하다. 국내 가계부채 총량(가계대출+판매신용) 통계는 한은에서 분기마다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가구별 소득과 자산이 제대로 반영된 통계는 없다.
통계청이 연말 한은, 금융감독원과 공동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 조사가 있지만 이 역시 설문조사라는 점 때문에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된다. 본인의 소득과 자산을 제대로 밝히길 꺼리는 심리 때문에 조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통계청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말 기준 가구당 부채는 6191만원이다. 한은 가계부채 총량 통계 기준으로 1인당 빚은 약 2500만원인데 1가구가 3~4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보다 부채 규모를 적게 응답한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은 이런 점을 고려해 민간신용사인 나이스신용정보에서 100만명 차주(借主, 돈을 빌린 사람)의 대출정보를 받아 지난해 3월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매 3개월마다 100만명 대출정보와 개인 특성정보(연령·성별·거주지 등)가 업데이트 된다. 분기별로 새로운 대출은 없는지, 대출금은 얼마나 갚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한은은 지난해 이 자료를 국가통계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통계청은 기존 가계금융복지 조사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절했다.
국가통계로 승인받지 못하면 자료의 외부공표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한은은 이 자료를 재가공해서 내부 검토자료를 만들거나 연 2회 발간되는 금융안정보고서 작성에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한은 가계부채DB 구축은 상당히 탄력을 받았다. 당시 정희수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한은 가계부채DB에 개인과세정보, 소득·자산 정보를 추가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은법, 국세기본법 등 5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한은 내부적으로 금융통계팀 산하에 ‘가계부채DB반’을 별도로 만들어 관련 업무에 집중할 정도였다. 그러나 해당 법률안은 개인정보유출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한은은 올해 7월 조직개편을 통해 가계부채DB반을 다시 금융통계팀으로 합쳤다. 한은 측은 법 개정 문제와 관련 없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소득·자산 정보를 반영한 통계 구축이 어려워진 점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한은 가계부채DB는 분기별로 통계발표가 가능해 연 1회인 통계청 조사보다 속보성에서 앞선다. 또 개인 대출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설문조사보다 차주의 대출상환 여부 등 미시분석에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입수된 정보가 가구가 아닌 개인 기준이며, 구체적인 차주의 소득과 자산정보가 없어 실질적인 부채 상환능력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통계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한은은 이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매년 1억원씩 신용평가사에 지불하고 있다.
정부는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한은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부채상환 리스크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양 기관의 가계부채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도 결국 제대로 된 통계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은이 가계부채DB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부채는 총량보다 어떤 소득계층에서 어떤 용도로 부채를 늘렸고 이들의 상환능력과 부담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이는 실효성 있는 가계부채 대책을 위해서도 매우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개인정보를 숨기려는 특성 때문에 개별 설문조사 방식은 신뢰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며 “최근 가계부채 질이 악화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저소득·저신용 계층의 상환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