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상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 및 해체는 단순히 가동 중인 원전 1기가 줄어드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원전을 짓고 가동하는 데만 목메던 국내 원전정책 패러다임이 대변혁을 맞이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38년간 경제성 있는 전원(電原)의 하나로 원전을 짓고 운영하는 데만 역량을 기울였다. 원전이 수명이 끝나면 가동을 중단해야 하고 해체,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사후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의 원전산업은 시공·운영 등 선행주기 경쟁력은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지만,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로 대표되는 후행주기 경쟁력은 뒤떨어지는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됐다.
많은 전문가가 고리 1호기의 해체가 성공적으로 끝나야 한국 원전산업이 온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받던 시기가 ‘원전 1.0 시대’, 핵심 기술의 국산화로 한국형 원전을 개발하고 수출까지 성공한 시기를 ‘원전 2.0 시대’라고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원전 3.0 시대’의 문을 열게 됐다는 것이다.
김용수 한양대 교수는 “어느 한 나라가 원자력 기술을 제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짓고 운영하는 것뿐 아니라 안전하게 해체하는 것까지 포함된다”며 “이제 온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눈앞에 다가온 고리 1호기의 해체를 자력으로 해낼 수 있을까. 현재 분위기는 “쉽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일반적으로 원전은 건설보다 해체가 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국내 원전해체 기술력은 선진국의 70%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적으로 원전해체의 핵심기반기술을 38개로 분류하는데 우리는 21개(55.3%)만 확보하고 있다.
실용화기술 58개에서도 41개(70.7%)만 보유하고 있다. 미확보 34개 기술은 △준비 △제염 △절단 △폐기물처리 △환경복원 등 전 과정에 분포돼 있어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다.
해체 전문인력이 태부족한 것도 문제다. 현재 국내에서 해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인력은 약 50여명에 불과하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전 해체에는 전문인력이 최소 150명 이상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6163억원을 투자해 2021년까지 미확보 34개 기술과 전문인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영국의 셀라필드 원자력복합단지와 일본의 로카쇼무라 원자력집적단지와 같은 원전해체산업 생태계 조성이 목표다.
정동희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오는 2022년까지 원전해체 기술의 자립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원전해체 전까지 안전하고 경제적인 해체기술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기술 이외에 해체비용 문제도 난제다. 현재 정부는 원전 1기를 해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6033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9년 기준 3251억원(물가상승률 반영 2011년 3989억 원)이던 것을 15%의 예비비 항목을 신설해 2012년 6033억원으로 2044억원 올려 책정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현실화한 것인데 국내 가동되고 있는 원전 25기를 지금 당장 해체한다고 가정할 때 전체 사후처리복구비는 단순계산으로 15조825억원에 달한다.
원전 운영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해체를 포함한 사후처리복구비를 6033억원은 현금으로, 나머지는 충당부채로 적립하고 있다.
애초 전액 충당부채로 적립했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다는 차원에서 지난해 1기분 해체비를 추가로 현금 적립했다.
지난 6월말 기준 적립한 총 사후처리복구비는 12조6205억원으로 △원전해체비가 9조8560억원 △사용후핵연료관리비용이 1조3752억원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비용이 1조3893억원이다.
한수원의 지난 6월말 총부채는 27조6860억원으로 사후처리복구비용이 45.6%를 차지한다.
문제는 정부가 원전해체비용이 너무 적게 잡은 것 아니냐는 점이다. 상용 원전해체 경험이 있는 미국과 일본이 쓴 1기당 평균 해체비용은 각각 7800억원, 9590억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01년 고리 1호기의 단위용량당(㎿) 해체 비용을 약 101만달러(1999년 기준)로 추산했다.
설비용량(587㎿)으로 반영하면 5억9287만달러(약 6616억원), 여기에 물가상승률(1999~2015년)만 반영해도 현재가치로 8억5255만달러(약 9514억원)다. 특히 해체 중에 사고라도 일어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는 1000㎿ 원전 1기당 해체비를 약 3681억원으로 추정했으나 폭발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은 해체 및 복구에 약 265조원이 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