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과로 사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 4.5일제 도입과 유연근무 확대 등으로 현재 연간 1800시간대인 근로시간을 선진국 수준인 1700시간대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취약 사업장은 제도 시행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칫 주 4.5일제가 근로 여건이 우수한 대기업·공공기관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플랫폼 노동 등 노동형태의 다양화로 노동자 간 이해관계도 달라졌다. 성급한 제도 시행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법정근로시간 단축보다는 노사 간 자율적인 합의에 따른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다. 현재 주 40시간으로 명시된 법정근로시간을 줄이면 모든 사업장에 일률적으로 적용돼 제도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과도기 연착륙을 위해 법적 규제보다는 지원을 통해 노동시간 감축을 유도한다.
장시간 근로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1865시간이다. OECD 38개국 중 7번째다. OECD 평균(1736시간)보다 129시간 많다.
정부는 우리나라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올해 시범사업으로 '워라밸+4.5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노사 합의로 임금감소 없이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 근로자 1인당 최대 8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올해 예산 276억원을 편성했다.
중소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지원금을 많이 책정했다. 근로자 50인 이상 우선지원 대상기업은 월 20만~40만원, 20인 이상~50인 미만 기업에는 월 30만~50만원씩 지원한다. 생명·안전 관련 업종의 경우 10만원씩 추가한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신규채용할 경우에는 60만~8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자칫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우선 지원으로 주 4.5일제 도입의 효용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탓에 주 4.5일제가 대기업 등 일부 일자리만 혜택을 받는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양질의 일자리와 그렇지 못한 일자리 간에 근로여건, 임금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조합의 존재 유무, 정년 보장 여부, 임금, 근로시간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이중구조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지금도 근로여건에서 차이가 많은데 주 4.5일제가 도입되면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간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소상공인이나 영세기업의 경우 지금도 인건비 상승과 인력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주 4.5일제를 도입하기란 쉽지 않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휴일·야간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가산수당 부담도 커진다.
주 5일제를 도입했던 20여년 전과는 달리 노동시장은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플랫폼 노동자들 경우 근무시간이나 근무형태가 다양해 단순한 사업주 지원만으로는 근로시간 감축을 유도하기 쉽지 않다. 일한 만큼 돈을 더 벌 수 있어 오히려 장시간 근로를 선호하기도 한다. 유연근무가 필수적인 IT 업계도 마찬가지다.
주 4.5일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화가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임금과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나 제도와 현실의 정합성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시행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 5일제를 도입한 뒤에도 제도가 사회 전반에 정착되기까지 약 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각 기업별로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업무량을 조정해야 했고 공장 등 연속 근로를 해야하는 사업장에서는 교대근무 등의 조정을 거쳤다. 휴일수당, 연장근로 등 근로시간 단축과 연계된 각종 제도의 손질에도 시간이 걸렸다.
차동욱 국회 입법조사관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주4.5일제는 임금과 생산성, 인력 운영 등 노동시장 전반의 조정이 필요한 변화"라며 "제도 도입을 성급히 앞당기기보다 사회적 대화의 기반을 차분히 갖추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