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로비에 '물가안정' 현판 내걸린 이유

한국은행 로비에 '물가안정' 현판 내걸린 이유

세종=박광범 기자, 세종=김온유 기자
2026.04.03 04:20

[일상 덮친 워플레이션]⑤

[편집자주] 한동안 잠잠했던 물가(Inflation)가 깨어났다. 물가 상승은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실질 소득을 줄인다. 줄어든 실질 소득은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그 어떤 경제 지표보다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최근 물가 상황을 짚어본다.
한국은행 본관 2층에 걸려있는 '물가안정' 현판/사진=최민경 기자
한국은행 본관 2층에 걸려있는 '물가안정' 현판/사진=최민경 기자

한국은행법 제1조 1항은 한은 통화신용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물가안정'으로 규정한다. 한은의 새로운 책무(맨데이트·Mandate)로 떠오른 '금융안정'에 앞선다. 한은법에는 '물가안정'이란 단어가 총 4번 등장하는데, 정부 경제정책과 호흡을 맞추기 위한 카드로 통화정책을 쓸 때도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로 엄격히 제한한다.

한은 본관 2층 로비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은 이같은 한은과 물가안정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가안정 현판은 1997년부터 한은 본관 로비를 지켜왔다. 리모델링 공사로 잠시 떼진 현판은 신축 통합별관 공사가 끝나자마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통화정책을 수립할 때 물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건 단순히 기관의 설립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물가 안정이 담보되지 않는 성장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세계 경제의 경험칙 때문이다.

실제 한은뿐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 등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기관도 일관되게 물가안정을 장기 성장의 '절대적 필요조건'으로 강조한다.

한은이 통화정책 수립 과정에서 성장보다 물가를 앞세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불길을 잡지 못하면 성장이라는 집 자체가 전소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경제 안정성을 훼손하는 근본 요인이다.

실제 물가 상승으로 가격 체계 흔들리면 경제주체들은 '시계제로' 상황이 된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 기업은 미래 비용 예측의 한계로 설비 등 투자 결정을 뒤로 미룬다. 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가계는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물가안정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은은 특히 '기대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를 경계한다. 물가와 임금이 서로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우려돼서다. 실제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란 심리가 확산하면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은 인건비와 원자재값 상승을 예상해 제품 가격에 반영한다. 그 결과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임금-물가 소용돌이(Wage-Price Spiral)'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법 상 '물가안정'/그래픽=이지혜
한국은행법 상 '물가안정'/그래픽=이지혜

전문가들 역시 물가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면 그 자체로 경제에 많은 타격을 주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장경제가 붕괴된다"며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 가격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이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경제가 붕괴되면 성장도 뒤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준석 카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도 "인플레이션이 제일 무서운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은의 선제적 금리인상 필요성이 대두된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뛰면서 물가 상방 압력을 키우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1970년대 '오일쇼크' 재연 우려까지 나온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여파로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났을 당시 배럴당 3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는 12달러 안팎으로 4배 가까이 급등했다. 이듬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3%까지 치솟았다.

무엇보다 향후 물가가 오를 것이란 인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된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양 교수는 "석유류와 쓰레기봉투 등이 인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된 사례"라며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 국민들이 사재기를 하면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인상을 해야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에서 석유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데, 환율까지 튀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어서 올해 하반기 금리를 1~2번 올리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1%에서 2.7%로 높이면서 성장률 전망치는 깎았다"며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큰 권역에 한국이 속한다는 것으로, 미국은 성장세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오르면 달러 강세가 유지돼 한은으로선 금리 인상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전히 높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통화 긴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선 중동 전쟁에 따른 경기 위축 우려도 동시에 커지면서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적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은은 신중한 입장이다. 최근 한은 총재로 내정된 신현송 후보자는 중동 전쟁에 따라 물가와 경기 중 어느 쪽 위험이 더 큰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까지는 불확실성이 많아 예단할 수 없다"며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에 대한 '실용적 매파(통화 긴축 선호)'라는 평가와 관련해선 "매파냐 비둘기파냐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제 전체 흐름과 금융·실물 간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어떤 효과를 자아냈는지 충분히 파악한 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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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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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온유 기자

안녕하세요. 경제부 김온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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