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 다 모아요" 열심히 일만 하면 '거지' 된다...깨진 성실 방정식

세종=박광범 기자, 김온유 기자
2026.02.01 08:00

[MT리포트]당신의 돈이 잠든 사이⑨

[편집자주] 유동성의 시대다. 돈이 풀리자, 돈은 가치를 잃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자산 시장으로 향했다.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는 달라진 자산 시장의 흐름을 보여준다. 자산 가치가 올라가자 돈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랠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실제로 가난해졌다. 그 현상을 짚어본다.
한국 증시 최초로 종가 기준 코스피 5000을 달성한 2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코스피 종가가 표시된 전광판을 배경으로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성실함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입니다."

최근 자산 인플레이션 현상에 대한 한 경제 전문가의 진단이다. 10년 전만 해도 '성실함'은 월급을 아끼고 적금을 부어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행위를 대표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 그 행위는 '가장 안전하게 가난해지는 길'이 됐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노동과 자본의 위계 질서가 완전히 뒤집혔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잘 되는 세상 아니다"…자산 양극화의 '덫'

전문가들은 '성실 방정식'이 깨진 것을 두고 "자본주의의 룰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위험을 피하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위험을 지지 않는 것(Zero Risk)이 가장 큰 위험이 된 시대라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열심히 일해 돈을 더 벌어봤자 자산시장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뛰는 것을 잡을 수 없다"며 "이제 더이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되는 세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청년 쉬었음(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상태) 인구가 많은데 그중 3분의1이 금융시장에 있다고 본다"며 "근로소득보다 수익이 많고 이자도 있으니 오히려 그러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노동이 부의 원천이었다면 이제 노동은 자본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일종의 '입장권'(시드머니·종잣돈) 마련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자산 랠리에 올라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랠리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벼락거지'라는 공포로 다가왔고 근로의욕 상실과 극단적인 투기 심리로 이어지고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코스피 지수가 약 75% 오르고 올해도 연달아 올라 단기간에 급속히 상승하니 사람들이 포모(FOMO·기 상실 공포)를 느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자본시장 활성화와 한국 증시 재평가는 필요하지만 단기간에 급격히 자산가격이 오르면서 투자자들도 불안한 마음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자산랠리에 올라탄 사람들 간 양극화도 문제다. 시드머니 격차에 따라 수익률에 큰 차이가 발생해서다. 안 교수는 "자본시장에선 똑같이 2배가 올라도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벌고 적으면 적게 번다"며 "이런 식이면 근로의욕이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산 양극화는 우리 사회 전반을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산 양극화가 내수 부진과 저성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교육 및 기회 불평등을 매개로 인적 자원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플레이션 시기의 양극화 심화는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과 같은 복합경제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산 랠리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냐에 대한 공포도 위험 요인이다. 강 교수는 "빚내서 투자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금까진 자산가격이 올라 괜찮았지만 앞으로 시장이 조정을 받았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며 "돈 많은 사람들은 손해를 봐도 그런데로 버티겠지만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제활동이 안 될 가능성도 높다"고 경계했다.

안 교수도 "과거 IT(정보기술) 버블 때도 똑같았다"며 "(자산가격 하락 과정에서) 누군가는 돈을 벌었지만 누군가는 엄청난 손실을 보게 돼 또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인 '금융 문해력 = 생존력'…"정부, 증시 활황에 취할 때 아냐"
29일 서울시내 부동산에 매물정보가 붙어있다./사진제공=뉴시스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 자본주의 생존의 룰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 속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개인의 '금융 문해력'이 곧 생존력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옛날 같았으면 집 하나 사서 버티면 됐지만 지금은 금융시장이 중요해져 금융 문해력이 좋아야 한다"며 "통달하진 않더라도 거시경제 변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자산관리를 할 수 있고,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정책 변화도 시급하다.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는 동시에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만 쏠리지 않고 실물 경제의 생산적 분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가 성장하다 보면 이득을 보는 사람과 손실을 보는 사람이 같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모두의 성장'이란 차원에서 자산 양극화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다각적인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증시 활황에 취하기 보단 실물경제와 괴리돼 과도하게 자산시장이 오른 것은 아닌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 교수는 "지난해 4분기 우리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최근 코스피는 5000을 돌파했다"며 "실물경제와 괴리가 생긴 것으로 언젠가는 터질 버블(거품)이 될 수 있다"며 "실물경제가 뒷받침할 수 있게 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코스피에 이어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을 추진하는 데 대해 "코스닥 시장은 아무 것도 안 하는데 소문만 내서 주식이 뛰기도 하는 시장이라 정부가 정비를 같이 해줘야 한다"며 "문제가 있는 종목은 퇴출시키고 기준이 되는 것들은 남아있을 수 있게 해 투자자들이 실체가 있는 곳에만 투자할 수 있게끔 정부가 뒷받침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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