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리터당 2000원 근접…29년만에 '가격 상한제' 만능 키 될까

세종=조규희 기자
2026.03.08 14:29
8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류 가격이 표시돼 있다./사진제공=뉴스1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선 돌파를 눈앞에 두며 실물경제에 경고등이 켜지자 정부가 '가격 제한'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검토하고 나섰다.

8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석유 판매가격 최고액 지정' 도입을 위한 법리 검토와 시장 영향 분석에 착수했다.

최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자마자 국내 기름값이 즉각 폭등한 것이 발단이 됐다. 통상 국제유가 변동이 국내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2~3주의 시차가 발생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정부가 정유업계의 담합을 의심하는 한편 비상시 가격 제한 카드를 긴급하게 꺼내 든 이유다.

정부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전까지 '최고가격 고시제'와 '유가 연동제'를 시행해왔다. 1994년 2월 발령된 고시에 따르면 당시 무연 휘발유의 소비자 상한가는 608원, 경유는 216원이었다. 정부가 1원 단위까지 가격을 결정하며 물가를 관리하던 시절이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에도 법적 장치는 남아 있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이하 석유사업법) 제23조는 국민 경제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최고 판매가격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9년간 이 카드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2012년 이란 핵 위기로 휘발유 가격이 사상 처음 2000원을 돌파했을 당시 이명박 정부는 "기름값이 묘하다"며 알뜰주유소 확대와 공급가 공개 등 '시장 경쟁 촉진'으로 대응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가가 2100원 선에 육박했을 때도 문재인·윤석열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역대 최대인 37%까지 확대하는 '세금 감면' 방식에 집중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이전 정부들이 활용했던 경쟁 유도나 세금 감면만으로는 현재의 '비정상적 급등'을 막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가격 직접 통제'를 예고하고 나섰다.

다만 과거 정부가 29년이란 시간 동안 직접 통제 카드를 활용하지 않은 이유도 있는 만큼 시장의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공급망 마비에 따른 '기름 대란' 우려가 제기된다. 주유소들이 손실을 피하고자 판매를 중단하거나 운영 시간을 단축할 경우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의 '줄 서기'와 '품절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단 우려다.

재정적 부담도 걸림돌이다. 석유사업법에 따라 정부의 가격 제한으로 사업자가 입은 손실은 세금으로 보전해줘야 한다. 유가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정유사와 주유소의 적자를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점진적으로 줄여왔던 유류세 인하폭을 다시 확대하는 방안과 비축유 방출 등 다른 대안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최고가격제 발동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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