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3고(高)' 위기 속에 먹거리 물가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환율 상승과 원자재 가격 불안이 맞물리며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농축산물 가격이 물가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으로 떠올랐다.
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중동 전쟁에 따른 농산물 가격의 직접적인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쌀·깐마늘·축산물 등 일부 품목은 높은 가격 수준과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1일 기준 쌀값(20kg)은 6만2751원으로 전년 대비 16.1% 올랐고 깐마늘(1kg) 소매가격도 1만2755원으로 9.9% 상승했다. 계란 소매가격(특란·30개)은 6939원으로 7000원대에 육박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긴장은 국내 농산물 시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국제유가 불안이 농업용 면세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농가의 생산비 부담이 커지고 있고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 변동성도 확대되고 있다. 향후 식탁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먹거리 물가 불안은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되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을 비롯해 기후플레이션(기후변화로 인한 물가 상승), 히트플레이션(폭염 등 이상고온 영향에 따른 가격 상승), 에그플레이션(계란 가격 급등), 밀크플레이션(우유 가격 상승) 등 다양한 형태의 먹거리 인플레이션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기후와 공급망 불안이 맞물리며 농축산물 가격은 상시적 물가 불안 요인으로 굳어졌다. 이는 곧 밥상 물가를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농산물 가격 변동성이 커지며 애그플레이션 개념이 등장했는데,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전쟁 등의 영향으로 발생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며 "한국처럼 원자재와 비료 등을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공급망 충격이 곧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축산물 가격 변동성이 커질수록 그 충격은 저소득층과 영세 업체에 더 크게 전가된다. 전쟁과 이상기후 등 대내외 변수로 인한 공급 충격은 업체 규모 간 격차로 이어진다. 대형 프랜차이즈나 유통업체는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일부 전가하거나 납품 구조를 조정할 수 있지만, 영세 업체는 대응 여력이 제한적이라서다. 가격을 올릴 경우 소비자 이탈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3년 실시한 '농식품 공급망에서의 물가 결정요인 분석 연구'에 따르면 종사자 수 5명 미만 사업장의 약 52%가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먹거리 물가 상승은 계층 간 부담 격차를 키우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농식품 소비자 물가지수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계층에 따라 소비 구조가 달라 물가 상승의 체감도 역시 다르게 나타났다. 소득 1분위와 고령가구는 멥쌀 지출 비중이 높고, 배추·마늘 등 김치 재료 소비 비중도 상대적으로 컸다.
특히 쌀과 채소 가격이 오르거나 변동성이 커질 경우 취약계층의 부담은 빠르게 확대된다. 필수 식품 중심의 소비 구조로 가격 상승을 회피하기 어렵고 대체 수단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농축산물 물가는 영세 업체와 저소득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농식품 가격 상승이 국내 물가로 빠르게 전이되는 구조를 고려할 때 제도적 대응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공급망 전반의 구조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원재료 가격 상승은 신속히 반영되는 반면 하락은 지연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영세 업체의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은 대기업은 가격에 전가할 수 있지만 영세 업체는 그렇지 못해 부담이 누적되는 구조"라며 "위기 시 즉각 작동할 수 있는 가격 안정 장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