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이후 국가별 통화 가치가 요동친 가운데 주요국 중 유독 원화 가치 하락세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한국의 높은 원유 의존도와 높은 자본시장 개방도에 더해 주요국 대비 국내 증시가 뜨거웠던 점을 원화 가치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은은 17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중동사태의 환율 영향 차별화 배경 및 평가'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미국 달러화 지수는 3개월여 만에 100을 상회하는 등 강세를 보였다.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된 데다 2020년을 기점으로 한 국제유가와 달러화 간 양(+)의 상관관계로의 변화가 맞물리면서다.
반면 전쟁 발발 이후 원화는 유독 힘을 못 썼다. 3월 말 기준 달러 대비 원화값은 전쟁 발발 직전 대비 6.3% 급락했다. △중국(-0.7%) △브라질(-1.0%) △베트남(-1.1%) △인도네시아(-1.3%) △일본(-1.7%) △영국(-1.8%) △캐나다(-2.0%) △대만(-2.3%) △유럽연합(-2.4%) △호주(-3.1%) △인도(-3.7%) △멕시코(-4.1%) △태국(-6.0%) 등 주요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큰 폭의 약세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전쟁 발발 이후 22일 영업일 경과 기준) 약 2% 수준 하락했던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발발 당시와 비교해도 원화 가치 하락 폭은 이번 전쟁 때 유독 컸다.
한은은 그 배경으로 높은 원유 의존도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로 인해 유가 상승이 교역조건 악화로 이어지면서 환율 상승 압력을 더 크게 받았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와 달리 이번엔 아시아 지역 원유 수입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위험)가 부각되면서다.
외국인 자금 유출 확대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코스피가 지난해 약 76% 상승하고 올해 들어서도 전쟁 직전까지 약 48% 상승하는 등 주요국 대비 시가총액이 빠르게 증가한 가운데, 이번 전쟁으로 조정을 더 크게 받았다는 설명이다.
주요 IB(투자은행)들은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 급증에 따른 비중 조정으로 전쟁 이전부터 외국인 주식 매도가 나타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한국은 1~3월 누적 약 433억달러의 자금 유출이 발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 등을 매도하고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한은은 우리나라의 높은 자본시장 개방도도 원화 가치 하락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의 높은 자본시장 개방도를 가지고 있어 글로벌 위험회피 국면에선 여타 신흥국에 비해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다른 신흥국은 자본 통제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높아 자금 유출이 제약돼 환율 변동성도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경향을 띤다.
한은은 향후 환율이 중동사태 진행 양상과 이에 따른 실물 경제 영향 및 통화정책 기대 변화 등에 크게 영향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현 사태 장기화로 높은 수준의 국제유가가 지속될 경우 에너지 공급 차질을 넘어 주요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방 압력이 확대되고 성장에 대해서는 하방 압력이 확대되는 등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실제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원화의 경우 중동사태 장기화시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 확대와 외국인 주식자금 유출 지속 가능성, 주요국 통화정책 기조의 긴축 전환 등이 맞물리며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