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과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도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서울 등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다시 강해지고 대출을 활용한 주식·부동산 투자가 늘면서 금융불균형이 누적될 가능성이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026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시스템의 단기적인 불안 상황을 나타내는 금융불안지수(FSI)는 지난 5월 17.2로 '주의 단계'를 기록했다. 지난 3~4월 중 상승한 뒤 소폭 하락했지만 지난해 12월의 16.3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장정수 한은 부총재보는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대체로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서울 등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세가 다시 확대되고 레버리지를 활용한 자산 투자가 증가하면서 금융불균형 누증 가능성이 높아진 점과 취약부문의 부실 확대 우려 등은 불안 요인으로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인 금융 취약성을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FVI)도 올해 1분기 46.0으로 장기평균인 45.7을 소폭 웃돌았다. 임광규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금융불균형 축적에는 자산가격 상승 움직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금리가 오를 경우 금융불안지수는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시장 불안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제약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신용은 올해 1분기 말 1993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5% 증가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재개를 앞두고 늘어난 주택거래가 시차를 두고 대출에 반영된 데다 주식 투자 등을 위한 기타대출도 증가하면서 최근 가계대출 증가 폭이 확대됐다. 가계대출의 월평균 증가액은 지난해 10~12월 2조7000억원에서 올해 5월에는 9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취약차주 비중도 차주 수 기준 지난해 3분기 말 6.4%에서 올해 1분기 말 6.7%로 상승했다. 대출금액 기준 취약차주 비중도 같은 기간 4.9%에서 5.2%로 높아졌다.
장 부총재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크게 증가하면서 가계부채 비율의 하락 폭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고, 가계부채 총량 리스크가 완화됐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라면서도 "가계부채 비율이 여전히 높은 데다 소득대비원리금상환비율(DSR)이나 취약차주 등 질적인 취약성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목 GDP 증가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등 특정 부문에 집중돼 차입 가구의 소득이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지고 가계대출도 증가하는 만큼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경계감을 가지고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부문의 부실 위험도 커졌다. 올해 1분기 말 금융기관 기업대출은 1974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8% 증가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2.43%로 다시 상승하며 장기평균인 1.62%를 크게 웃돌았다.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0.4배로 마이너스 상태가 이어졌다.
자산시장에서는 금융불균형이 다시 쌓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국고채 금리가 국내외 통화정책 기대 변화와 중동 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큰 폭 상승했고, 주가는 반도체 업황 호조 등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변동성도 함께 확대됐다.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대출을 동반한 투자가 늘면서 시장의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장 부총재보는 "레버리지를 동반해 투자하면 가격이 떨어질 때 반대매매를 통해 주식이 처분되면서 변동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빚을 내 투자하지 않은 사람도 변동성 확대로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외부효과와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등 수도권 주택시장에서는 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지면서 매매가격 상승 폭이 다시 커졌다. 한은은 주식시장의 차익 실현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이동하면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금융불균형 완화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외지급능력도 양호한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 들어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는 지난 9일까지 주식자금을 중심으로 833억7000만달러 순유출됐지만 외화차입 가산금리는 낮은 수준을 이어갔다. 5월 말 외환보유액은 4269억9000만달러로 집계됐다. 한은은 현재 외환보유액이 대외충격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원화 약세와 관련해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가 주요 배경으로 거론됐다. 장 부총재보는 "최근 외국인 주식 매도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요인보다는 차익 실현이나 리밸런싱 차원의 성격이 크다"며 "매도가 진정되고 경상수지 흑자 등을 고려하면 환율도 점차 안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시장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앞으로 금융불균형 누적 가능성에 유의하면서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정책 간 공조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장 부총재보는 "금융시스템 내 잠재 리스크 요인을 조기에 포착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와 함께 정책 대응을 적극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