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의 역대급 국내 주식 순매도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우려가 다시 커진 데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대규모 자금을 회수하면서 달러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2원 오른 1545.2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2009년 3월(1549.0원) 이후 약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5일부터 30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2거래일 만에 1540원대로 복귀했다.
이날 환율 상승을 이끈 가장 큰 요인은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이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7000억원 넘는 주식을 순매도하며 7거래일 연속 '팔자'를 이어갔다. 순매도 규모는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수준이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해 해외로 송금하는 역송금 수요가 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졌다.
글로벌 기술주 투자심리 위축도 외국인 자금 이탈에 영향을 미쳤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기업공개(IPO)를 내년으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나스닥지수가 약세를 보였다. 국내 증시에서도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을 중심으로 외국인 매도세가 확대됐다.
주말 사이 중동 정세가 다시 불안해진 점도 달러 강세를 부추겼다.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다시 군사적 긴장을 높인 뒤 카타르에서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휴전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의 안전자산 선호를 자극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당분간 원/달러 환율의 상방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외국인 주식 매도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긴축 기조와 중동발 지정학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달러 강세 환경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외환당국의 개입과 반기 말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네고) 물량은 환율 상승 속도를 일부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540원대를 중심으로 높은 변동성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주말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다시 군사행동을 주고받으면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부각됐다"며 "여기에 오픈AI 상장 지연 가능성으로 AI 관련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 이탈이 이어져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