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고용 창출'이란 공식이 깨지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에 따른 수출 호조로 성장 지표가 개선되며 국가 경제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정작 국민이 체감하는 일자리 온도는 식어간다. 특히 '고용없는 성장'은 세대 및 지역, 계층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정부 역시 지표에 나타나지 않는 고용시장 어려움을 극복할 다양한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 수요와의 미스매치 등 당장의 고용 절벽을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단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반도체가 포함된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의 취업유발계수는 2.87명으로 1년 전보다 0.75명 줄었다. 취업유발계수는 특정 부문에 대한 최종 수요가 10억원 발생할 때 전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 수를 의미한다. 해당 산업의 성장이 얼마나 고용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반도체는 생산 과정에서 인력보다 첨단 설비가 많이 활용되는 까닭에 다른 산업 부문과 비교해 성장에 따른 고용 창출 효과는 낮다. 반도체 초호황을 중심으로 한 한국 경제의 높은 성장세가 고용 시장 활황으로는 연결되진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의 '일자리 형태·산업별 임금 근로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반도체 제조업의 임금 근로 일자리는 8년 전보다 14.5%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신규 채용 일자리는 오히려 21.6%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성장 지표와 고용시장 격차는 확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7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1월 전망(2.0%) 대비 1%포인트(p) 상향 조정했다. 반면 고용 전망은 후퇴했다. 올해 취업자수가 지난 1월 전망(16만명)보다 1만명 적은 15만명 증가에 그칠 것으로 봤다.
한은 전망도 다르지 않다. 한은은 지난달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 에서 3.3%로 높여잡았지만, 취업자 수는 당초 전망보다 4만명 적은 14만명 증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도 최근 '고용 없는 성장'을 주목한다. 고용시장 한파 영향이 청년층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을 고려해 청년일자리 회복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피지컬 AI·데이터센터)와 연계해 2030년까지 전문인력 30만명을 양성하고 민간·공공일자리와 창업 기회 30만개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경력 같은 신입' 양성이다. 최근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로 청년들이 채용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진단에 따라 재정을 투입해 청년들에게 경력을 만들어주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정부가 만들어준 경력을 기업이 실제 경력으로 인정할지 미지수여서다. 또 첨단분야 인력 양성책은 중장기적 청사진에 불과해 신입 공채 축소로 당장 고용 절벽에 직면한 청년들의 구직난을 해결하기엔 실효성이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정책이 현장 수요와 거꾸로 가고 있단 점이다.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기업을 정책 지원에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재정경제부는 통합고용세액공제 대상에서 대기업을 제외키로 했다. 이 제도는 상시근로자 수가 증가한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줘 고용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대기업을 통합고용세액공제 대상에서 유지해야 한단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기업의 고용 인센티브를 없앨 경우 양질의 일자리 확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경협 관계자는 "현행 제도에서도 대기업은 청년·장애인·60세 이상 근로자 등을 추가 고용한 경우에만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지원 수준도 중소·중견기업보다 낮다"며 "이미 지원 대상과 요건이 제한적인 만큼, 대기업에 대한 제도 적용을 유지해 줄 것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정부가 나랏돈을 들여 만드는 노인일자리가 불러온 '고용지표 착시'를 경계해야 한단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올해 노인일자리를 역대 최대인 약 115만개 공급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3만명 가량 많은 약 118만개 노인일자리를 공급하기 위한 2027년 예산안도 편성했다.
이에 따라 65세 이상 가운데 일하고 있는 사람 비중이 늘면서 전체 고용률이 올라가는 통계적 착시 현상이 유지된다. 고령층 빈곤 문제를 개선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의 순기능은 살리되, 경기 판단 왜곡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단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취임 직후 첫 간부회의에서 "눈앞의 지표에 안주하지 말고 거시경제 분석·전망 역량을 한층 높여달라"고 했다. 또 "경기 회복으로 확보되는 정책여력을 활용해 성장의 온기가 지역·계층·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