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도, 법인 이사들도 다 반대했죠. 그래도 우리가 농가와 함께 생산한 콩을 직접 가공해서 소비자에게 팔아보자고 했습니다."
경남 사천 콩사랑영농조합법인 조영제 대표는 지난 달 27일 국산콩 가공사업에 뛰어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농가와 함께 기른 콩으로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직접 팔아보겠다는 결심이었다.
콩사랑영농조합법인은 같은 달 15일 국산콩 가공공장 준공식을 열고 압착오일과 분말 등으로 농가의 판로를 넓히는 도전에 나섰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상당한 자부담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산콩 가공제품이 시장에 안착할지 확신하기 어려워 가족과 이사들도 만류했다.
그런데도 가공공장 건립을 결심한 것은 30년 넘게 콩을 다루며 생산 현장에서 느낀 위기감 때문이었다.
조 대표는 1990년 콩 관련 일을 시작해 2000년부터 국산콩 재배와 계약재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상기후로 농가의 생산 여건은 불안해지는데 가공업체와의 거래에서는 늘 원가가 벽이었다. 수입콩과 가격만으로 경쟁해서는 농가가 버티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가공업체들은 원가 전쟁을 하는데 미국과 한국의 생산비는 비교가 안 된다"며 "농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료를 사줄 기업만 기다리는 대신 농가와 함께 기른 콩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직접 알려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큰 시장을 단번에 차지하기보다 국산콩을 알아주는 소비층부터 만들겠다는 판단이었다.
조 대표는 "법인 설립 이후 배당하지 않고 쌓아둔 이익잉여금이 있었다"며 "농가와 함께 국산콩을 유통하며 모은 돈인 만큼 국산콩의 새로운 판로를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오랜 거래에서 쌓은 신뢰다. 조 대표는 콩값이 급등했을 때도 거래처에 약속한 가격보다 더 받지 않았다고 했다. 당장의 이익보다 농가·거래처와의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제 새로운 과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일이다. 농가와 계약을 맺고 원료를 확보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직접 만든 제품의 가치를 알리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그는 "계약재배를 해왔던 열정으로 마케팅과 인터넷 판매를 배우고 시장에 접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제품은 소비자가 반복해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내놓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국산 원료의 차별성을 인정받되 비싼 가격 때문에 한 번의 구매에 그쳐서는 소비 기반을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저장·가공·판매에 체험을 결합한 '국산콩 밸리'를 구상하고 있다. 소비자가 콩의 보관과 가공 과정을 살펴보고 콩으로 만든 음식도 맛볼 수 있는 공간이다. 어떤 원료를 쓰고 가격은 어떻게 정했는지 투명하게 보여주며 신뢰를 쌓겠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앞으로 3~5년 안에 고정 소비층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일회성 구매를 넘어 꾸준히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있어야 농가와의 계약재배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제품의 재구매가 이뤄지면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며 "농가와 상생하면서 자생력을 갖춘 유통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천에서 시작한 시도가 다른 지역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조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도 후배들이 이런 거점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10년 뒤에도 콩농사가 소득이 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