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진, 워킹맘 된 '은실이' 향한 뭉클한 응원

한수진 ize 기자
2023.01.31 09:16

'대행사'서 응원 부르는 열혈 워킹맘 은정 역 열연

'대행사' 전혜진, 사진제공=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10살에 데뷔해 24살에 결혼, 그리고 서른 무렵에 연예계 복귀. 전혜진은 아역배우로 시작해 촬영장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결혼, 출산과 함께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 당시엔 여성 배우가 결혼을 하면 은퇴도 종종 하던 시절(2010년)이었고,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시 연예계로 돌아왔을 때 전혜진에게 주어진 배역은 한정적이었다.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2017)은 정식 복귀작였지만 그가 연기했던 효은은 여자 주인공의 친구였다. 하지만 같은해 출연한 파일럿 예능에서 그는 "아이를 낳고 계속 일을 활발히 할 줄 알았다. 이천희가 촬영장 갔다오면 하는 이야기에 공감이 되고 부럽기도 했다. 현장에 너무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SBS '싱글와이프')고 밝혔을 만큼 오랫동안 연기를 쉬었던 전혜진에게는 이마저도 감사한 역할이었다.

어린나이에 '은실이'(1998)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혜진은 육아와 함께 "현장에 있고 싶은" 갈망의 시간들을 견뎠다. '은실이' 속 전혜진의 야무진 연기는 서서히 대중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출산과 육아로 오랜 기간 카메라 앞을 떠난 뒤 단절된 경력을 잇기 위해 그는 연기를 더 크게 열망했다. 하지만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찍고 이듬해 tvN '마더'와 웹드라마 '세상에 없던 하루, 5월 32일'를 동시에 찍었지만 영화 '빛나는 순간'(2021)에 출연하기까지 또 3년 간의 경력 단절을 겪었다.

'대행사' 전혜진, 사진제공=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마더'에서 그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세상에 없던 하루, 5월 32일'에선 실제 남편인 이천희와 현실 부부를 연기했다. 전혜진이 할 수 있던 연기는 엄마와 아내란 굴레에 머물렀다. 배우이고 싶어 다시 선 카메라 앞에서 그는 어느 새 '은실이' 전혜진이 아닌, '이천희 아내'라는 타이틀에 걸쳐져 있었다. 하지만 전혜진은 타이틀에 지지 않았다. 7년 공백 후 또 4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에서 그는 자유로운 여자의 위태로움을 완전하게 연기하며 다시 기회를 마중했다. 그 작품이 바로 JTBC '나의 해방일지'(2022)다. '나의 해방일지'는 어딘가 위태로운 청춘들의 평범한 삶을 특별한 순간으로 그려낸 작품이었고, 전혜진은 자유롭고 뜨거운 '지현아'라는 역할을 만나면서 '배우 전혜진'으로 완벽하게 재각인됐다.

그는 어린나이에 정극을 이끌었을 만큼 타고난 연기 DNA가 좋은 배우다. 촬영장에서 몸소 터득한 것들은 KBS '일단 뛰어' SBS '그대 웃어요' 같은 정극부터 SBS '똑바로 살아라' 같은 시트콤에서도 늘 안정적으로 제 몫을 해냈다. 결혼 후 한정된 역할에만 머무르던 것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 '나의 해방일지'에서 어떠한 경지의 연기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주려 사력을 다했지만, 그는 또다시 누군가의 엄마로 카메라 앞에 섰다.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의 워킹맘 은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은정을 통해 더 크게 외치는 듯하다.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 힘내서 가야할 자기 자신으로서의 독립에 대해.

'대행사' 전혜진, 사진제공=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은정과 전혜진의 공통점은 '워킹맘'이라는 배경과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은정은 남의 실패를 기회로 삼는 대기업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이자, 떼쟁이 유치원생 아들을 둔 엄마다. 은정은 결혼 전부터 남편에게 출산 조건으로 육아에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 손을 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인다.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를 찾고, 출근길에 나서는 은정에게 등돌리기 일쑤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은정은 속이 시리다. 업무가 과중된 회사생활도 뼈 아프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은정은 먹을 것만 입에 물리면 언제나 밝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유치한 듯도 보이는 이 작은 설정은, 자신의 뜻대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식욕이라는 욕구에 충실한 전혜진의 먹는 입을 통해 예상치 못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혜진은 '대행사'에서 저물지 않는 일(연기)에 대한 열정을 과하게 힘을 주지 않고 느슨한 조절을 오가며 은정의 고군분투를 씩씩하게 보여준다. 밥을 입에 우걱우걱 욱여넣은 채 "힘들어서 두 공기밖에 못 먹었다"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한편, 빨간색 헤드폰을 쓰고 카피라이터로서 문장을 조각할 때는 전혀 온도가 다른 눈빛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종종 어디로 튈지 모를 멘트를 하는 호랑이 상사 고아인(이보영)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면서 활력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전혜진은 살아남기 까다로운 전쟁터에서 아줌마이기에 가능한 넉살과 간절한 마음으로 '대행사' 바깥의 같은 존재들의 응원가로 활약한다.

아이에게 사직서를 내고 "인수 인계 중"이라고 친 거짓말의 끝이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도 활력을 피어내는 모습에서 일과 육아라는 딜레마에 대한 완벽하지 않지만 그에 가까운 정답을 안겨줄 것만 같다. 이와 동시에 전혜진 역시 이 이야기의 수많은 주인공 중 하나이기에,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는 공감에 더 사력을 다해 달려줄 것만 같은 믿음을 주고 있다. 은정에게 공감하는 시청자들의 응원 속에서 '역할을 충실히 잘 소화하는 배우 전혜진'으로서의 가치는 이미 분명하게 이뤘다. 엄마이기 '때문'이 아닌 엄마이기에 '가능'한 더 넓은 영역의 무언가에서 전혜진은 힘차고도 뭉클하게 존재감을 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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