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서진이네'에서 박서준은 이따금씩 "원래 저런 형이 아니었는데"라며 누군가를 향해 작게 읊조린다. 박서준이 지칭하는 형은 '윤스테이'와 '윤식당2'를 함께하며 알고 지낸 지 6년이 된 이서진이다. 박서준의 말대로 '서진이네'의 이서진은 이전과 좀 다르다. 과거 MBC '무한도전'에서 식스맨이 되어달라고 요청받았을 때도 "나는 뭐든지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윤스테이'나 '윤식당'에서도 한산하고 할 일이 없어야 보조개 꽃을 피었던 그가, '서진이네'에선 손님이 많고 할 일이 많아야 입꼬리를 올린다.
이서진은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3에 출연했을 때도 "이 썩을 놈의 프로를 3년째 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한끼를 챙겨 먹기 위해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던 상황에서 뱉은 말이다. 반면 '서진이네'에서는 가게 근처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만큼 한산하자 "한국 음식 난리났다며. 난리는 개뿔"이라며 제작진에게 투덜댄다. 여러 예능에서 보여준 '투덜이' 이서진의 모습은 여전하다. 하지만 투덜대는 이유가 달라졌다. 이제껏 이서진에게 "썩을 놈의 프로"란 해야 할 일이 많은 예능을 뜻했으나, '서진이네'를 기점으로 반대의 의미가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직위에 있게 되면 그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할배들의 '가이드이자 짐꾼'이었고, '윤식당'과 '윤스테이'에서는 윤여정의 '책사이자 총무'였다. 늘 분명하게 자신의 일은 수행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에 한정해 움직였다. 의욕이나 능동은 이서진과 거리가 먼 단어였다. 가장 눈을 반짝일 때는 "귀찮아" "하기 싫어" "이걸 왜 해"라는 식의 '의지 없음'에서 비롯된 불평불만들을 토로할 때였다.
이서진은 "묻어 가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예능에 존재했다. '꽃보다 할배'나 '윤식당'뿐만 아니라 '삼시세끼'에서도 에릭이나 윤균상, 옥택연과 같은 후배들 앞에서 굳이 선배라는 이름의 책임을 떠안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사장이라는 직급이 분명하게 주어지고 프로그램명마저 자신의 이름을 딴 '서진이네'에서는 좋든 싫든 일련의 책임을 껴안게 됐다. 그렇게 모든 것을 귀찮아하던 투덜이는 이제 영업 시간 연장을 외치며 가게 밖 호객행위에도 적극적이다.
늘 제작진에 했던 투덜거림은 이제 직원들을 향한다. "당근 언제까지 썰거야. 오이로 넘어가" "할 수 있을 때 뭐든지 해놔야 돼" "핫도그는 다 꽂아놨어?" "뭐 준비가 돼야 오픈을 하지"라며 쉴 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때문에 박서준은 이 악물고 반죽을 젓고, 정유미는 눈치보기 일쑤다. 심지어 막내 뷔는 이서진을 향해 "헷갈립니다. 이 사람이 좋은 분인지 나쁜 분인지"라고 말한다.
프로그램 사전미팅 자리에서 "6년 만에 사장 등극"했다며 나영석 PD와 직원들(정유미, 박서준, 최우식)의 축하를 받던 이서진은 "이런 날이 오는구나"라며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자 "가격 더 올릴 걸"이라며 매출을 아쉬워하고, "테이블 하나 더 놓자"라며 새삼 의욕적이기까지 하다. '윤식당2'에서 가게 문을 5분 먼저 열자던 윤여정에게 "5분 먼저 열면 5분 일찍 닫으면 되죠"라고 말하던 그다.
그러나 '서진이네'에선 "7시 오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6시 30분 오픈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빨리빨리 진행하자"라며 열의를 보인다. 자리가 이끈 '귀차니즘 투덜이' 캐릭터의 흥미로운 변주이자, 새로운 재미다. 이는 이서진과 나영석 PD 조합이 식상하다 여겨질 때쯤 벌어진 일이다. 그는 여전히 열성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사장이지만 평소처럼 바지 사장이나 하겠다며 대충대충 했어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러려니 했을 일이다. 드라마로 치면 그는 사장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을 뿐 출연료를 받고 카메라 앞에 서는 위치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서진이네'의 성공적인 출항은 아닌 척 은근히 주변을 챙기며 노력하는 '츤데레' 이서진의 열심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