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예능의 빌런들, 양날의 검인 이유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03.30 09:22
사진출처=채널 S, MBN 오피스빌런' 방송 영상 캡처

‘빌런(Villain)’은 ‘악당’이란 기본 뜻을 가진 단어로 주인공인 ‘영웅’에 반대되는 인물을 말하거나, 특정 행위나 사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단어가 드라마에서 작동하는 방식은 모두가 알고 있다. 악역, 때로는 사연을 가지거나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극의 모든 갈등요소는 악역의 악행에서부터 시작되며, 결국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각성하고 복수를 하는 과정은 강렬한 흡인력으로 대중을 끌어들인다.

드라마에서 잘 설계된 빌런의 존재는 필수다. 그런 이유로 최근 인기를 끌었던 많은 드라마들 예를 들면 JTBC ‘재벌집 막내 아들’이나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 디즈니플러스의 ‘카지노’ 같은 작품에는 눈길을 끄는 빌런이 등장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 빌런이라는 요소가 더 빛을 발하고 지능적으로 쓰이는 곳이 바로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빌런’은 과거에는 그저 성격적으로 화를 내거나 악을 잘 쓰는 인물이었다가 프로그램의 균형을 묘하게 무너뜨리는 인물이었다. 최근처럼 관찰예능이 발전한 상황에서는 각종 솔루션 프로그램을 통해 나타나는 빌런들의 등장에도 관심이 쏠린다.

예능 빌런의 등장은 예능에 리얼리티가 적용되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 수 대의 카메라가 출연자를 쫓으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담는 리얼리티 예능에서는 반드시 선역 만 있으면 안 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사건건 출연자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등장이었는데 ‘무한도전’의 박명수, ‘남자의 자격’ 이경규, ‘런닝맨’ 이광수 등의 캐릭터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모두 진행자 역할을 했던 유재석이나 PD들의 말을 듣지 않고 버럭 화를 내거나, 호통을 치고 때로는 권모술수와 배신으로 판을 흔들었다.

최근에도 이러한 계보는 이어지고 있다. ‘연애의 참견’ ‘홍김동전’ ‘지구마불 세계여행’ ‘만찢남’ 등의 예능에 연이어 등장하고 있는 모델 출신 예능인 주우재는 심드렁한 표정과 분명한 자기주관으로 주류와는 맞지 않는 비주류 빌런의 모습을 보인다. ‘지구마불 세계여행’에서 여행에 정통한 크리에이터들 앞에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이 대표적인데 ‘홍김동전’에서도 멤버들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주우재(위) 김준호. 사진출처=방송영상캡처

‘미운 우리 새끼’와 ‘돌싱포맨’ 등에 출연하는 김준호 역시 대표적인 빌런 캐릭터다. 코미디 등 사전에 합을 맞춘 예능이 아닌 경우 김준호의 캐릭터는 장난을 좋아하고, 진지하지 않으며 연인에게 조차 선을 넘는 장난을 건다. 그는 연인인 김지민에게도 심한 장난을 해 주부들의 커뮤니티 ‘맘카페’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2020년 이후 본격적으로 솔루션 예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특별하게 문제있는 행동을 하는 현실판 ‘빌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SBS ‘골목식당’의 홍은동 포방터시장 홍탁집 사장이나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 나오는 문제가 많은 배우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에 출연하는 아동이나 부모들도 비슷한 급으로 몰렸다.

이는 현실연애를 다루는 연애 예능에서도 자주 등장했는데 ENA와 SBS Plus에서 방송하는 ‘나는 SOLO’에서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출연자나 티빙의 ‘환승연애’에 나오는 출연자들도 비슷한 비판을 당했다.

앞에 기술한 연예인 빌런들과 뒤에 기술한 비연예인 빌런들의 공통점은 모두 프로그램의 시청자를 빌런의 생각이나 행동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결집시켜 프로그램을 보는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빌런들의 행동을 보면서 이를 탓하거나 비판하며 한쪽으로 모였고 이는 화제를 불렀다.

사진출처=SBS '골목식당' 방송 영상 캡처

하지만 비연예인 빌런, 그리고 그 현상의 문제는 이들이 외부의 비판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은 ‘비연예인’이라는 사실이다. 논란이 된 이들은 방송 출연 때 만큼이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문을 닫거나, 개인의 경우에는 사회생활의 통로가 막히는 등 부정적인 효과도 나타났다.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빌런 찾기와 몰기에 경도된 나머지 원래 솔루션의 의도를 잊고 자극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수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대한민국의 방송가는 ‘히어로’에 대항하는 ‘안티 히어로’ 즉 빌런의 존재가 꼭 필요함을 숙지하기 시작했다. 이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빌런으로 채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최근에는 선과 악이 모호한 캐릭터들도 등장하며 더욱 더 시청자들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예능의 빌런 경우도 비슷하다. 채널S와 MBN의 경우에는 요즘 아예 ‘오피스 빌런’이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해 직장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익명으로 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그 고발의 당사자가 되는 이가 실제 상황을 알았을 때 이를 심리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가 돼있느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빌런, 예능에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쓰임이나 구성에 있어서는 정교한 고려가 따라야 한다. 빌런을 몰아가는 감각적인 쾌감에만 몰두한다면 정작 우리가 봐야하는 교훈의 방향은 영원이 가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